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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공신 옹치(雍齒)의 교훈

입력
2014.03.27 1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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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시사(時事)가 결합된 문제를 한번 생각해봤다. 독자들께서는 아래 글을 읽고, A국과 B국이 어딘지 추측해보시길 바란다.

#1. A국의 개국 공신, 옹치(雍齒)에 관한 얘기다. 그가 젊었을 때 나라가 혼란에 빠졌다. 동네 친구가 '나라를 구하겠다'며 거병했다. 친구는 전략 거점인 풍읍을 맡겼으나, 옹치는 배반했다. 친구의 경쟁자에게 풍읍을 바치고 목숨까지 빼앗으려 했으나 실패했다. 겨우 도망간 옹치는 마음을 바꿔 귀순 의사를 밝혔다. 친구도 악연을 잊고 받아줬다. 옹치는 친구가 제위에 오르는데 공을 세웠다. 그러나 공헌도는 여러 공신 중 50위권 밖이었다.

한편 황제는 논공행상을 제때 하지 않아 원성을 샀다. 벼슬도 안주고 식읍도 내리지 않자 공신들의 불만이 팽배했다. 황제의 최측근도 푸대접을 받자, 옹치는 옛 친구가 배신의 경력을 문제 삼아 자기를 죽일지도 모른다며 두려움에 떨었다.

그런데 대반전이 일어났다. 옹치가 제일 먼저 '십방후' 벼슬과 2,500호를 봉읍으로 받았다. 감격한 그가 알아봤더니 충격적인 진실이 또 드러났다. 공신들의 불만을 차단하려고 제일 미워하는 사람에게 먼저 상을 내렸다는 것이다. 어쨌든 계책은 효과를 봤다. 다른 공신들이 '옹치도 상을 받네. 나도 좋은 소식이 있겠지'하며 불만을 접고 묵묵히 처분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이 때문일까. A국은 개국 초반 위기를 잘 넘기고 이후 200년 이상 번성했다.

#2. B국에는 양호와 성구라는 신하가 있었다. 양호는 나라 곳간을 관리하는 탁지부 소속이었다. 사치 풍조가 불더니 국고가 바닥나고 은행에도 돈이 떨어져 민생이 도탄에 빠질 상황까지 몰렸다. 은행을 외국에 팔아 돈을 들여오는 게 해법이었다. 양호는 융통성을 발휘해 외국 전주(錢主)를 적극 물색, 위기가 닥치기 직전 팔 수 있었다.

위기에서 빠져 나오자마자 너무 싸게 팔았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감찰부 관원이 들이닥쳐 흥정도 않고 싸게 넘긴 죄목으로 양호를 옥에 가뒀다. 수년 간의 송사 끝에 무죄 판결을 받아 방면 됐다. 이후 탁지부에는 규정만 따져 업무를 처리하는 '양호 증후군'이 확고한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성구는 저자 거리의 공정 관행을 감시하는 관아에서 근무했다. 상인들이 백성 돈을 먼저 받고 떼먹는 피해가 잇따르자 주요 상단에서 보상금을 받아두는 제도를 도입키로 했다. 그런데 모은 돈의 관리 주체를 놓고 업자끼리 싸움이 벌어졌다. 피해를 줄이려면 하루라도 빨리 돈을 모아야 하는 만큼 성구는 자기가 맡겠다고 했다. 상인들도 '성구라면 믿겠다'며 그의 궤짝에 돈을 맡겼다. 이후 백성은 편히 살게 됐다. 그러나 성구는 자기 궤짝에 돈을 모았다는 이유만으로 감찰부 조사를 받아야 했고, 여러 차례 승급에서 물을 먹었다.

짐작대로 A국은 '한(漢)나라', B국은 '대한민국'이다. 모두 관료집단 상벌 관리의 중요성을 보여준다. 굳이 구분하자면 1,300년전 한 고조 유방(劉邦)의 역발상 논공행상이 성공 사례라면, 대한민국 사연은 실패 사례다.

중국 고사까지 꺼낸 건 정부가 최대 국정과제로 내건 규제개혁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극적 공무원에 대한 사후 면책"필요성을 강조했지만, 과거 실패로 충분히 단련된 공무원 사회는 요지부동이다. 개혁 작업을 주도한다는 기획재정부마저 공기업 부채 감축에 필수적인 자산매각 과정의 '헐값 매각'시비에 대해 다른 소리를 내고 있다. 시비를 감수하더라도 조기 매각하라고 채근할 때는 언제고, 청와대가 눈치주자 제값 받으라고 태도를 바꿨다.

난마처럼 얽혀 규제개혁이 쉽지 않다면 고조의 수법도 검토할 만하다. 공무원에 대한 '사후면책'은 물론, 용감히 나섰다가 이미 억울하게 피해 본 사람들을 찾아내 파격 혜택으로 보상하는 방법 말이다. 주위를 둘러보니 억울한 사연이 생각보다 많았다.

조철환 정치부 차장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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