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7일 소득공제 장기펀드(소장펀드)가 첫 선을 보일 때만해도 기대가 상당했다. 이 상품은 연간 600만원 한도에서 납입액의 40%까지 소득공제를 해주는 주식형 펀드. 금융당국은 국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쟁취'해 낸 '납입액 40% 소득공제' 혜택이 막강한 위력을 발휘할 것으로 내다봤다. 펀드 시장에, 또 주식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줄 거란 기대감도 있었다.
하지만 상품 판매가 시작된 지 열흘 남짓.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실적이 너무 초라하다. 27일 한국금융투자협회 집계에 따르면 전날을 기준으로 30개 자산운용사가 출시한 44개 소장펀드 가입계좌는 총 7만7,882개로 자금 유입액은 102억3,000만원(잠정치)에 불과했다. 펀드 당 고작 2억원 남짓 자금을 모았을 뿐이다. 일부 펀드는 자금 유입액이 수백만원에 불과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대로라면 전체 소장펀드 중 절반 이상이 '자투리 펀드'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파격적인 혜택에도 불구하고 당초 예상과 달리 왜 이렇게 흥행이 부진한 걸까. 업계에서는 다양한 원인을 내놓는다. 가장 먼저 엄격한 가입 대상 조건을 꼽는다. 이 상품은 연 총급여액이 5,000만원 이하인 근로소득자만 가입할 수 있다. 그런데 이 펀드는 국내 주식에 40% 이상을 의무적으로 투자해야 하는 주식형 펀드. 원금 손실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얘기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여윳돈을 굴리는 것이 아니라 우선 목돈을 만들어야 할 고객들이 과연 원금 손실 가능성이 있는 주식형 펀드에 선뜻 투자할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몇 푼 소득공제를 받겠다고 상품에 가입했다가 배(세금 혜택)보다 배꼽(투자 손실)이 더 큰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더구나 소장펀드는 절세가 장점인데, 이런 소득계층에게는 대체 가능한 절세 금융상품이 적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장기 보유에 따른 부담도 지적된다. 소득공제 혜택을 받으려면 고객은 최소 5년 이상 펀드에 가입해야 한다. 안정적인 예ㆍ적금 상품도 아닌 펀드 상품에 5년 이상 자금을 묶어두는 것이 서민들에게는 상당히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다.
부진한 증시도 한 몫을 하고 있다. 증시(코스피)가 장기간 1,800~2,000선의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 보수적인 투자자들로서는 주식형 펀드 가입을 망설일 수밖에 없다.
이에 따라 벌써부터 제도 보완 요구들이 쏟아진다. 일각에서는 가입 대상자의 연봉 조건을 대폭 높여야 한다는 주장을 편다. 실제로 주식형 펀드에 여윳돈을 굴릴 수 있는 이들로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고소득 근로자에게까지 납입액의 40%에 달하는 파격적인 소득공제 혜택을 줘서는 안 된다는 것이 대체적인 견해. 김재칠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소장펀드 가입 대상자를 5,000만원 이하 근로소득자로 그대로 유지하되 펀드 보유기간을 5년보다 짧게 축소하는 방안은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장펀드의 흥행 실패를 벌써 단정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많다. 향후 증시가 상승 곡선을 긋고 연말정산 시즌이 다가오면 소장펀드 가입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따라서 제도 개선을 검토하려면 줄어드는 세수와 펀드 거래 증가로 늘어날 수 있는 증권거래세 규모를 신중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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