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금융권 인사들 사이에서 "금융회사의 실질적 최고경영자(CEO)는 금융당국"이라는 자조 섞인 푸념이 종종 나온다. 밥 먹는 것부터 인사, 상품개발, CEO 임금까지 금융당국이 시시콜콜 지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부당대출과 횡령, 고객정보 유출, 대출사기 등 잇단 대형 금융사고로 금융당국의 개입이 늘어날 수 밖에 없다는 상황론도 타당한 측면이 있다. 하지만 모든 사안마다 금융당국이 일일이 간섭하는 것이 금융산업을 위축시키고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최근 금융당국이 "3만원 이상 접대를 하거나 받을 때 준법감시인에게 미리 보고하라"고 은행들에게 내린 지시가 과잉규제의 대표적 예이다. 영업 관련 접대로 한정했지만, 은행권은 이구동성으로 "현실을 외면한 과잉 규제"라고 말한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최근 서울시금고 유치 과정에서 은행 간 과당경쟁 조짐이 보여 마련한 방안"이라며 "영업과 관련한 접대만 아니면 금액은 문제가 안 된다"고 말했다.
'접대비 3만원' 규정은 빠져나갈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전시성 규제라는 지적도 있다. 은행 업무가 여수신 말고도 광고, 홍보 등 다양한데 이런 접대라고 보고하면 3만원 규제 적용에서 제외된다. 인원 뻥튀기 방법도 있다. 은행 관계자는 "영업상 접대 시에도 3명을 만난다고 먼저 신고했는데, 15만원이 나왔다면 그쪽에서 2명 더 나와 비용이 늘었다고 추후 보고하면 그만"이라고 말했다. 다른 은행 관계자는 "3만원이면 과도하지 않고 5만원이면 과도하다는 기준의 근거가 무엇이냐"며 어처구니 없어했다.
작년 말 금융당국이 잇딴 비리를 예방한다며 금융회사에게 5년 순환보직제와 명령휴가제를 도입하라고 지시한 것도 최고경영자(CEO)의 인사권을 침해하는 과도한 간섭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게다가 대부분의 금융회사는 2000년대 초중반부터 명령휴가제를 통해 비리 의심 직원을 휴가 보낸 뒤 감찰을 해왔다. 또 통상 3년마다 보직을 변경하면서 일부 특수업무의 경우 예외를 두는 식으로 운영해왔다. 금융사 고위 관계자는 "최근 드러난 비리들을 보면 금융당국이 발견한 것이 거의 없다"며 "금융사 자체 감찰을 통해 적발해 당국에 통보한 것이고 당국은 징계하면 되는데, 무리하게 경영에 간섭하려 한다"고 불쾌해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업무 특성 별로 장기적으로 근무할 보직도 있는데 일률적으로 5년을 적용하라는 것은 문제"라며 "규정 때문에 한꺼번에 보직을 바꿔야 한다면 업무 미숙련으로 인한 사고 가능성이 오히려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조만간 여러 손해보험사에서 출시하기로 한 피싱ㆍ해킹피해 보상 보험도 금융당국의 압박에 '울며 겨자먹기' 식으로 만들어졌다. 손보사 관계자는 "금융당국이 기존 개인정보보호 보험의 내용을 강화해 신상품 출시를 지시했다"며 "여기에 기존보험 가입 기업에는 갱신 시 신규보험으로 갈아타도록 하고 금융회사는 신상품에 반드시 가입할 것을 당부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금융당국 관계자는 "업계가 먼저 이런 상품이 있다고 의뢰를 한 것이지 당국에서 지시한 것은 없다"고 압력설을 부인했다.
금융지주사 회장 및 은행장들의 올해 임금이 평균 30%씩 삭감된 것도 금융당국의 압박 결과다. 이사회와 주주들이 결정할 사항에 대해 '실적도 안 좋은데 고액 연봉만 챙긴다'며 당국이 으름장을 놓자, 금융사들이 따를 수밖에 없었던 것. 한 금융회사 관계자는 "이렇게 모든 사안마다 간섭할 거면 차라리 금융당국이 경영을 해보라고 말하고 싶을 정도"라고 분통을 터뜨렸다.
이대혁기자 selected@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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