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 후 20년 넘은 세월이 흘러 과거 동독과 서독의 경제력 격차가 크게 축소되면서 잦아들기는 했으나, 통일 비용 문제는 독일에서도 여전히 논란의 대상이다. 통독 당시 동독 주민 소득은 서독의 3분의1 수준이었다. 게다가 갑작스런 통일 탓에 동ㆍ서독 통합에 투입된 비용은 온전히 서독의 몫이었고, 당연히 국가부채 급증과 조세부담 증가 등 서독 경제에 큰 짐이 됐다. 한스 모드로 전 동독 총리는 2010년 독일 통일 20주년 인터뷰에서 "서독이 천문학적 돈을 썼다고 하지만, 구 동독지역 주민의 20%는 여전히 서독보다 더 적은 봉급을 받고 실업률도 2배 가량 높다"고 했다. 경제적 갈등이 통일 독일의 사회통합을 저해하는 핵심 요인이라는 얘기다.
통일 비용과 관련한 독일의 경험은 우리가 반면교사로 삼을 만하다. 헬무트 콜 서독 정권은 통일이 확정된 1990년 2월에서야 비로소 비용 논의를 시작했다. 첫 작품이 서독 마르크와 동독 마르크를 1대1(또는 1대2)로 교환하는 화폐통합인데, 지금도 통일 직후 동독 경제를 단숨에 무너뜨린 요인으로 지목된다. 통일부 당국자는 "수십년 간 계획경제 시스템으로 움직이던 동독 시장을 과도기적 보호 장치 없이 자본주의 서독 경제에 편입시키면서 생산성이 낮은 동독 기업의 도산이 속출했다"고 설명했다.
통일 비용을 어떻게 정의하느냐에 따라 차이는 있지만 연구기관들은 지난 20년간 서독에서 동독으로 이전된 규모를 대략 2조유로(약 3,000조원) 이상으로 추정한다. 정확한 수치가 없는 건 99년 이후 독일 정부가 관련 통계를 내놓지 않고 있어서다. 매년 통일 비용이 예상을 훨씬 초과하고 사회적 논란이 거세지자 비공개로 전환했다.
비용 폭증의 주원인은 사회보장비 지출이었다. 일부 공개된 통일비용 수치(1990~2003년)를 봐도 사회보장성 이전 비용이 전체 부담의 절반에 육박한다. 독일은 통일 초기 4년은 통일기금을 조성해 동독 지역의 세수부족을 충당했지만 곧 바닥을 드러냈다. 낮은 생산성을 고려하지 않고 동독 근로자 임금 기준을 서독에 맞추는 바람에 기업 채산성이 악화하면서 대량 해고와 사회보장비 상승의 악순환이 이어졌다.
콜 총리는 결국 "통일로 인한 세금 인상은 없다"는 장담을 꺾고 '연대세'를 도입했다. 당초 92년에만 소득세ㆍ법인세에 한시적으로 7.5%를 더 걷을 계획이었으나, 95년 이후 재도입했다. 세율은 97년부터 5.5%로 낮아졌지만 세부담에 따른 국민 불만은 폭발했다. 세금은 국민이 가장 민감하게 저항하는 대상이기 때문이다. 2010년 이명박 전 대통령이 8ㆍ15 경축사에서 '통일세 신설' 제안을 내놓자마자 역풍을 맞은 것도 "통일 비용을 국민 호주머니에서 빼내간다"는 비난 여론 때문이었다.
박근혜 정부는 이런 우려를 감안해 통일을 소모적 비용이 아닌 북한에 대한 투자 개념으로 접근하고 있다. 당장에는 비용이 발생하는 것 같지만 농업개혁과 인프라 개선으로 북한의 생산력이 강화되면, 장기적으로는 경제성장과 그에 따른 세수 증가로 투입비용보다 높은 수익을 얻게 된다는 논리다. 하지만 남한의 1인당 소득이 북한의 18.7배(2012년 기준)에 달할 정도로 남북 격차가 극심한 만큼 우리 정부가 보다 적극적이고 구체적인 통일재원 방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이삭기자 hiro@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