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시불황이 지속되면서 증권업계에 구조조정의 그림자가 짙어지고 있다. 문을 닫는 증권사가 늘어나고 이미 매물대상에 오른 증권사만 10여 곳. 개별 증권사들도 비용절감 차원에서 인원을 대폭 줄이고 있다.
하지만 증권사 채권영업은 구조조정 무풍지대다. 오히려 실적이 좋은 팀에 대한 스카우트 경쟁이 치열하다. 증시부진으로 주식 위탁수수료 수입이 급감하면서 그나마 수익을 낼 수 있는 사업부문이 채권영업이기 때문에 해당 인력의 몸값이 치솟고 있는 것이다.
26일 업계에 따르면 채권영업 스카우트 경쟁의 시발점은 KB투자증권 채권영업팀 13명이 지난해 8월 한번에 하이투자증권으로 옮기면서부터다. 이 팀은 지난해 상반기 채권영업으로 100억원이 넘는 수익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인력을 뺏긴 KB투자증권은 KTB투자증권 채권영업팀에서 15명을 스카우트했다. 이어 KTB투자증권은 소매영업, IT인력 등 인력 100여명을 줄이는 가운데서도 지난해 12월 NH농협증권에서 채권영업팀 6명을 데려왔다. NH농협증권은 올해 1월 다른 중소 증권사에서 채권영업 인력 3명을 새로 채용했다. 한 증권사 임원은 "계약직 채용이 많아 이동이 잦긴 하지만 불황기에 대대적인 이동은 이례적이다"며 "증시침체에 증권사들이 채권영업에 사활을 걸고 있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증권사 채권영업팀은 주로 기관투자자들을 상대로 채권을 매매한다. 금융기관들이 자금을 운용할 때 기초자산이 되는 채권(국채, 회사채 등)을 사고 파는 중개 업무로 수수료를 얻고, 금융기관이 채권을 발행할 때 인수 수수료도 받는다. 증권사들은 최근 수년 간의 증시침체로 주식매매 위탁수수료는 수입이 절반이상 급감하자, 채권영업에 공을 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과거 증권사 수익의 70~80%를 차지했던 주식거래 위탁수수료가 최근 50~60%로 낮아진 반면 채권 중개수수료 등 부수업무 수익 비중은 높아졌다. 한국예탁결제원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주식결제대금은 283조원으로 전년대비 9% 감소했지만, 채권결제대금은 5,085조원으로 전년대비 10% 늘어났다. 주식거래보다 채권거래가 더 활발하다는 얘기다. 증권사 채권영업 관계자는 "주식과 달리 채권은 보험사나 연기금 등으로부터 꾸준한 수요가 있고, 파생상품 등과 결합한 다양한 상품을 판매할 수 있다는 이점이 있다"고 설명했다.
'채권 강자'였던 증권사들이 줄줄이 위기에 처한 상황도 채권맨 영입경쟁이 치열해진 이유 중 하나다. 지난해 말 옵션 주문실수로 한맥투자증권이 파산위기에 처하자 이 회사 채권영업팀 13명은 올해1월 코리아에셋투자증권으로 이동했다. 앞서 계열사 부실 기업어음(CP)과 회사채 등을 판매해 위기에 몰렸던 동양증권 채권영업 담당자들도 다른 증권사로 자리를 옮겼다. 이밖에 매물로 나온 증권사에서도 이탈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한 증권사 관계자는 "증권사들이 인수합병 되면 영업팀이 관리하는 기관투자자들이 겹칠 수 있기 때문에 자리를 옮기려는 사람들이 꽤 있다"고 말했다.
채권맨들이 회사를 옮길 때 팀 단위로 움직이는 것도 눈길을 끈다. 채권영업은 팀 구성원들이 기관투자자와의 유대관계를 통해 매매를 체결하는 경우가 많아 팀원 별로 각자 쌓은 인적 네트워크가 조화를 이뤄야 하기 때문에 팀 단위로 움직여야 연봉협상 등에서 유리하다고 말한다. 업계 관계자는 "손발이 맞는 팀원과 능력이 있는 부서장이 함께 움직이는 경향이 강하다"고 말했다.
강지원기자 styl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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