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그 핵안보정상회의를 계기로 한 양자 정상회담에서 북핵 협상 내지 대화를 둘러싼 이해당사국들의 시각이 엇갈리는 가운데 한국의 역할이 주목되고 있다. 그나마 박근혜 대통령이 6년째 교착상태에 빠진 6자 회담 재개와 관련해 기존보다 진전되고 전향적인 입장을 내놓았기 때문이다. 더욱이 박 대통령이 한ㆍ미ㆍ중 3국 수석대표 협의를 언급함에 따라 한국의 역할론에 무게가 실린다.
이번 한중 정상회담,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드러난 미국과 중국의 입장은 확 차이가 난다. "조속히 6자 회담을 갖자"는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의 제안에 대해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북한이 아직 진지하게 협상테이블에 앉으려는 자세를 보여주지 않고 있다"고 선을 그었다. 일단 대화를 시작하고 문제를 풀어나가자는 중국이나 비핵화 조치가 선행돼야 대화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미국의 기존 입장 그대로다.
당초 한국도 미 측과 입장을 같이 했지만 23일(현지시간) 한중 정상회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의 톤은 확 달랐다. "비핵화의 실질적 진전을 이룰 수 있다는 보장이 있고, 북한 핵능력 고도화 차단의 보장이 있다면 대화 재개와 관련한 다양한 방안을 모색할 수 있을 것"이라면서 한ㆍ미ㆍ중 수석대표 협의를 거론했다.
북한의 '행동'을 요구하던 기존 입장에서 '말(공약)'로 6자 회담 재개, 북핵 대화의 문턱을 낮춘 것으로 볼 수 있는 부분이다. 이러한 박 대통령의 유연한 입장 전환은 대북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맥이 닿아 있다. 북핵 문제에서 진전이 없는 한 대북 경제제재 완화나 경제협력 확대 조치를 취하기가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박 대통령이 6자회담 재개의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한ㆍ미ㆍ중 3국 협의 방안을 내놓은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중국 측에는 북한의 약속을 받아내는 동시에 압박 수단 및 보장 방안을 제시토록 하고, 미 측에도 진전된 입장전환을 촉구하며 대화 재개에 주도적인 중재자 역할을 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조성렬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책임연구위원은 "'한ㆍ미ㆍ중' 협의가 실현된다면 북핵을 고리로 3국의 전략적 논의 수준을 높이는 한편, 통일 국면에서도 우리 입지가 그만큼 단단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박 대통령의 언급에 대해 전향적인 입장 전환으로 볼 수 없다는 시각도 있다. 6자회담의 조속한 재개를 촉구하는 시 주석을 배려한 일종의 립 서비스, 외교적인 발언으로 보는 것이다. 한중 정상회담 당시 우리 외교부도 박 대통령의 발언 진의를 파악하는 데 부심하다가 수 시간 뒤 "대통령 말씀은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는 공식 입장을 내놓았다.
조철환기자 chcho@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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