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일 오전 인천 부평구 십정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 골목길을 거쳐 두 사람이 마주 지나기조차 비좁은 샛길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니 담벼락이 무너진 주택이 위태롭게 서 있었다.
2가구 5명이 살고 있는 이 집 담벼락은 지난 18일 새벽 무너져 내렸다. 1년 전 붕괴사고 이후 나무기둥으로 떠받쳐놓았던 담벼락이 다시 무너진 것이다. 집 벽면 곳곳에는 아이 주먹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균열이 일어났고, 집 앞 샛길에도 온통 금이 가 있었다.
이 집에서 10년 넘게 살고 있는 이모(24·여)씨는 "17일 부평구에서 현장조사를 하고 간 다음날 담벼락이 무너져 내렸다"며 "집 안쪽도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이라 하루 빨리 보상절차가 마무리돼 이주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십정동 주거환경개선사업지구는 2007년 지구 지정이 됐지만 아직까지 사업은 지장물 조사 단계에 머물고 있다. 19만3,000㎡ 땅에 아파트 3,000여세대를 건설하는 이 사업은 시행 주체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천문학적인 부채로 인한 자금난, 낮은 사업성,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멈춰있는 상황이다. 1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보상금도 발목을 잡고 있다.
문제는 지은 지 20~30년이 된 낡은 건물 때문에 주민들이 붕괴사고 위험에 노출돼 있다는 점이다. 과거 이 동네에는 건물 1,488채에 2,771가구가 거주했지만 현재는 200여가구가 이주해 관리되지 않는 빈집도 많다. 2011년에는 집중호우로 빈집이 무너져 다른 집을 덮치는 사고가 일어나기도 했다.
이 동네에서 40년 넘게 살았다는 한 주민은 "담벼락이 무너진 집뿐만 아니라 다른 집들도 지붕이 기울거나 벽에 금이 간 상태"라며 "(붕괴사고 위험이 높은) 장마철을 또 어떻게 지낼 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LH와 부평구는 붕괴사고 위험이 있는 주택 거주자들을 대상으로 주택 매입과 전세 임대주택 입주를 알선하고 있지만 실제 이주로까지는 이어지지 못하고 있다.
이주 후에도 보상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문서로 약속해달라는 주민들의 요구에 대해 LH가 공식답변을 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임대주택이 다른 지역에 있다 보니 생활근거지가 바뀌는 것에 부담을 느끼거나 이주 자체를 거부하는 주민들도 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임대주택에 입주한 주민은 11가구뿐이다. 사업 추진에 난항을 겪고 있는 LH는 사업성을 개선하기 위해 노후주택부터 단계별로 개발하는 방식을 검토 중이지만 주민들은 사업 대상에서 배제되거나 사업이 축소될 것을 우려해 반대하고 있다.
부평구 관계자는 "LH는 주민들이 이주하더라도 거주자와 동등한 보상자격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한 상태"라며 "다음달 중 위험시설물에 대한 전수조사를 추진해 실태를 파악하고 LH가 조속히 사업 재개를 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환직기자 slamhj@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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