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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집 욕조 창문에 펼쳐지는 인왕산 풍경… 습관적 욕망 줄이고 버리니 충만감이

입력
2014.03.25 12: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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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집 전경 /2014-03-25(한국일보)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집 전경 /2014-03-25(한국일보)

● 50대 부부 거주 실험"인왕산 보며 살고 싶다" 아내의 소박한 꿈에서 출발건축 최대면적 확보하려 얇은 콘크리트 패널 사용1~3층을 한 공간처럼 나선형 계단으로 연결 2층서 음악 틀면 집 전체로"투자·대형에 얽매였던 삶 얼마나 많은 것들을 놓치고 살아왔는지 절감 중"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에서 내려 자하문터널 방향으로 가다가 통인시장 조금 못 미친 지점에서 왼쪽 골목으로 빠지면 오래된 거리가 나온다. 상점과 연립주택의 교차. 당연한 풍경에 나른해진 시선이 길 끝 3층 건물 앞에서 긴장감을 되찾는다.

대지면적 34.53㎡(10.44평), 건축면적 19.21㎡(5.8평). 두 세 걸음 만에 지나쳐 버릴 수 있는 이 작디 작은 집은 ANL 스튜디오의 안기현?이민수 소장이 지은 '몽당주택'이다.

"일본에 협소주택이 많은데 여긴 그보다 더 작아요. 협소주택은 보통 10평 정도인데 이 집은 5.7평(1층), 4.8평(2층), 4.2평(3층)이에요."

2012년 9월 완공 이후 몽당주택에서 1년 반째 살고 있는 건축주 K씨는 좁은 공간에서 몸을 부려야 하는 일이 마치 남의 일인 양 유쾌하게 말했다. 실제로 2, 3층은 성인 2명이 누우면 꽉 차는 크기다. 1층은 그보다 약간 넓다. 협소주택보다 더 작은 이른바 '극소주택'이다.

"큰 집보다 작은 집을 선호하시나 봐요." 기자의 말에 건축주와 건축가가 동시에 웃음을 터뜨렸다. "전혀 아니에요. 우연히 작은 집에서 살게 됐는데 거기서 생각이 바뀐 것이 순서가 맞아요."

50대에 접어든 K씨 부부(대부분의 건축주들이 그렇듯 이들도 자세한 신원이 공개되는 것을 꺼렸다)는 자연스레 노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K씨는 특히 걱정이 컸던 남편을 위해 일종의 '안정제' 개념으로 서촌에 손바닥만한 땅을 샀다. 서촌을 택한 이유는 자신이 어릴 적 뛰어 놀던 곳이기 때문이다. "인왕산을 너무 좋아해요. 여기 건물이 들어서게 되면 외부로 계단을 내서 가끔 옥상에 올라 인왕산을 보려고 했어요." 언뜻 소박해 보이는 그의 꿈은, 그러나 아들의 예리한 지적 앞에 실체를 드러냈다. "엄마는 왜 자신의 욕망을 뒤로 미뤄요?"

지금 당장 불가능한 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특별한 이유도 없이 습관적으로 욕망을 연기해온 삶이 스스로도 낯설게 느껴졌다. "우리가 어느새 세뇌돼 있는 게 아닌가 해요. 투자, 역세권, 50평…이런 단어들 때문에 원하는 걸 놓치고 살았구나 싶었어요."

극소주택 프로젝트는 이렇듯 거대한 각성과 함께 시작됐다. 아들은 설계를 맡을 건축가로 안기현ㆍ이민수 소장을 추천했다. 2008년 ANL스튜디오를 설립한 두 사람은 이듬해 인천 송도시 인천대교 위의 전망대 '오션 스코프'를 설계해 독일 레드닷어워드 건축?인테리어 부문 대상인 '베스트 오브 베스트'를 한국인 최초로 수상했다. 그러나 무서울 것 없는 젊은 건축가들에게도 이렇게 작은 집은 난제였다.

집 주변의 모든 것이 한 폭의 그림

"두 가지 원칙을 세웠어요. 첫째 대지가 좁으니까 건물에 허용된 부피를 전부 활용할 것, 둘째 도로와 접해 있으므로 개구부의 위치를 신중하게 결정할 것."

가장 먼저 한 일은 대지 위에서 건축한계선이 허용하는 최대 면적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외장재는 두꺼운 콘크리트 대신 얇게 붙일 수 있는 콘크리트 패널을 사용했다. 10㎝가 아쉬운 상황이었다.

주방이 있는 1층을 제외하고 2층과 3층은 용도를 특정하지 않았다. 이불을 펴면 침실이 되고 걷으면 거실이 된다. 집 한 쪽에 1층부터 3층까지 관통하는 계단실을 만들고 나선형 계단을 설치했다. 협소한 공간에서 할 수 있는 유일한 선택이었지만 시각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부분이 됐다.

그러나 사선제한이라는 난관이 남아 있었다. 일조권 보장을 위한 사선제한 법 조항에 따라 주택의 2층 중간부터 3층까지 한쪽이 사선으로 또 잘려나갔다. 사선으로 기운 벽은 흔치 않다는 점에서 기분전환의 효과는 있지만, 장롱 하나도 놓을 수 없어 공간활용 면에선 최악이다. 건축가들은 사선으로 잘리는 쪽을 수납 공간으로 활용하기 위해 2층 바닥 일부를 한 단 낮추는 방법을 택했다(. 1층에 있으면 내려 앉힌 2층 바닥에서 사람의 다리가 왔다 갔다 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을 막지 않고 뚫어놓은 이유는 세 개 층으로 분절된 공간을 서로 연결하기 위해서다.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2층에 수납창고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한 단 내린 모습, 공간을 뚫여놔 1층과 2층이 연결된다. /2014-03-25(한국일보)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2층에 수납창고를 만들기 위해 바닥을 한 단 내린 모습, 공간을 뚫여놔 1층과 2층이 연결된다. /2014-03-25(한국일보)

"건축주의 요구 중 하나가 2층에서 음악을 틀어도 집 전체에 다 들렸으면 하는 거였어요. 저희도 좋다고 생각했어요. 일반적인 크기의 집이 방과 복도로 연결돼 있다면 몽당주택은 각 층이 하나의 방이고 원형 계단이 복도 역할을 해요. 계단은 복도에 비해 이동성이 떨어지니까 이런 공간을 통해 집을 시각ㆍ후각ㆍ청각적으로 통일시킬 수 있죠. 여길 통해서 1층에서 커피를 마시다가 2층에 있는 남편을 부를 수 있고 간단한 음식을 건넬 수 있어요."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2층 수납장 바닥에 앉아서 본 모습. 사선제한으로 잃어버린 공간을 찾기 위해 바닥을 40~50cm 낮췄다. /2014-03-25(한국일보)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2층 수납장 바닥에 앉아서 본 모습. 사선제한으로 잃어버린 공간을 찾기 위해 바닥을 40~50cm 낮췄다. /2014-03-25(한국일보)

건축가들은 1층 바닥을 40~50㎝ 아래로 파 내려가 손실된 층고를 복구했다. 사선제한으로 뺏긴 2층 공간을 땅 아래에서 되찾은 셈이다.

공간 확보만큼 경관도 중요했다. 몽당주택의 경우 주변 환경이 훌륭한 편은 아니었다. 건물의 좌우와 뒤로 다른 집들이 빈틈없이 붙어 있고 앞은 2차로 도로를 사이로 상가 건물과 마주보고 있다.

건축가들은 집 주변 풍경 중 쓸만한 것들을 고른 뒤 마치 액자에 담듯 신중하게 개구부를 냈다. 집 바로 뒤에 붙어 있는 개량한옥 쪽에는 길고 좁은 창을 내 기와 지붕만 보이도록 했고, 도로와 면한 정면에는 2층 중간부터 3층까지 위로 점점 넓어지는 사선 형태의 통창을 내 햇볕을 충분히 받으면서도 사생활이 보호되도록 했다. 창 위치도 건물 중앙이 아닌 측면으로 잡아, 맞은편 상가 대신 삼거리의 풍경을 멀찍이 담아내는 기지를 발휘했다.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3층 목욕탕에서 바라본 모습. 천장에 창을 내 빛을 많이 받도록 했다. /2014-03-25(한국일보)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3층 목욕탕에서 바라본 모습. 천장에 창을 내 빛을 많이 받도록 했다. /2014-03-25(한국일보)

몽당주택의 전망 중 가장 훌륭한 인왕산은 특히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애초에 건축주가 이 땅을 택한 것도 인왕산 때문이었다. K씨는 상식 이하로 작은 집에 사는 것을 거부하는 남편에게 "인왕산이 보이는 3층에 노천탕 느낌의 목욕탕을 지어주겠다"고 설득했다. 목욕을 좋아하는 남편은 결국 "2년만 살아보겠다"며 허락했다. 3층에 목욕탕이 있는 특이한 구조는 이 때문이다. 욕조 안에 앉으면 멀리 인왕상의 수려한 자태가 시원하게 뚫린 창 안에 오롯이 담긴다. 2년만 살겠다던 남편은 요즘 "6개월 남았다"는 아내의 말에 조용히 고개를 돌린다. K씨는 "아마 계단을 오르기 힘든 나이가 될 때까지 살게 될 것 같다"며 빙긋이 웃었다.

"약간의 모자람이 얼마나 큰 충만으로 돌아오는지"

몽당주택을 놓고 건축가와 건축주는 1년 넘게 대화했다. 건축주는 자신의 일과와 생활 패턴을 정리한 20여장의 원고를 전달했고, 건축가들은 집주인의 철학과 제한된 규모, 건물의 조형미를 하나로 녹여내기 위해 고심했다.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2층 벽에 낸 길고 좁은 창. 집 뒤 개량한옥의 지붕이 액자처럼 담긴다. /2014-03-25(한국일보)
작은집 시리즈 2 몽당주택/ 2층 벽에 낸 길고 좁은 창. 집 뒤 개량한옥의 지붕이 액자처럼 담긴다. /2014-03-25(한국일보)

1층에 난 긴 사선의 창은 그 소통의 결과물이다. 처음 K씨가 원한 것은 1층 아래로 길게 난 직사각형의 창이었다. 그는 이곳을 행인을 위한 책 전시장으로 쓸 생각이었다. 내용이 훌륭한데도 잘 알려지지 않은 책들을 전시해 몽당주택 앞을 지나는 이들에게 은근히 권할 속셈이었다. 그러나 건축가의 눈에 아래로 길게 난 창은 집 전체의 모양과 조화를 이루지 못했다. 이들은 세로로 길게 난 창을 제안하는 대신 창문 선에 맞춰 1층의 한쪽 면을 사선으로 날카롭게 잘라냈다. 도로에서 한 발 안으로 들인 모양새다. 이민수 소장은 "가질 수 있는 걸 다 가지지 않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도로에 네모난 집들이 빈틈없이 붙어 있으면 굉장히 답답해 보여요. 이 부분은 자기 소유의 일부를 공공에 양보하겠다는 몸짓 같은 거예요. 건축주도 흔쾌히 허락했어요. 워낙 행인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것에 관심이 많은 분이거든요. 건축가로서 조형미에 대한 욕심도 있었죠. 부피를 확보하는 데만 신경 쓰면 조형미를 놓치게 되니까요."

이 희한한 주택은 여러 사람을 바꿔 놓았다. 가장 많이 바뀐 이는 역시 1년 반 동안 그 안에서 산 K씨다. 그는 협소함으로 인한 불편보다 집으로 인해 바뀐 자신의 모습에 경도된 듯 했다. "집이 사람을 만든다는 걸 실감하는 중이에요. 물건 살 때 신중해지는 건 물론이고 버리는 것의 쾌감도 알게 됐어요. 공간이든, 소유물이든 적게 가지는 것이 얼마나 삶을 충만하게 하는지 경험하고 있어요."

그는 이 집으로 옮기면서 짐의 상당 부분을 버렸다. 옷도 문짝 3개짜리 장롱에 전부 수납할 수 있을 정도다. 그나마 문짝 2개는 남편 몫이다.

"5평짜리 집에 산다고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가능할 거라고 생각해요. 실제로 살아본 적이 없는 데도요. 하지만 자신을 가두고 있는 상식이란 것이 실재와 얼마나 다른지, 이 시대에 약간의 모자람이 얼마나 큰 충만으로 돌아오는지…이 집을 통해 새삼 느끼고 있어요."

황수현기자 soo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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