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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봉렬 칼럼] 파국이론의 교훈

입력
2014.03.25 11: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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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으로 가는 주말 오후, 전망 좋고 양지 바른 산마루에 그를 묻고 돌아왔다. 대표적인 건축가이며 존경 받는 스승으로 20여년을 살았지만, 마지막 1년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그는 스스로 삶의 의지를 놓아버렸다. 그의 죽음 뿐 아니라, 학교를 둘러싼 여러 사고와 의혹들이 봇물처럼 터져 잠을 이루지 못한다. 대학 공동체의 수장으로서, 지난 임기에 벌어진 일들의 뒷감당이라고 책임을 회피할 수도 없다. 어제의 결과는 오늘의 현실이며, 지금의 균열은 내일의 붕괴로 이어지는 경고이기 때문이다.

원인을 찾고 대책을 세우는 중에 계속해서 하나의 수학이론이 머리를 맴돈다. '파국이론'. 불연속적 결과를 가져오는 계속되는 행동들에 대한 수학적 모델에 대한 이론이다. 현대 위상 수학 중에서도 가장 복잡한 이론이어서 함수나 수식 모델을 이해하기 어렵지만, 일상적인 사례들은 쉽게 이해가 된다. 예를 들어 찻잔을 쥐고 가볍게 흔들면 초기에는 찻잔 속의 액체가 쏟아지지 않지만, 계속 흔들면 어느 순간 넘쳐버린다. 처음에는 외부에서 가해지는 변화를 흡수하여 가능하면 안정적인 상태를 유지하려는 것이 모든 물리계의 본능이다. 그러나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외부 변화에 이르면 평형이 깨지고 파국에 이른다. 지난 2월 한 대학 신입생들이 경주 마우나리조트에서 수련회를 하던 중, 강당이 붕괴되어 무려 115명의 사상자를 냈다. 건축물은 무너지지 않기 위해 여러 겹의 안전 장치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너졌다는 것은 수많은 원인들이 겹친 결과이다. 이 리조트는 원래 골프장에 부속된 가족용 숙박시설이었다. 그러나 대학교 오리엔테이션과 같이 단체 행사의 요구가 많아, 대규모 인원을 수용할 강당 건물을 급조해야 했다. 공사기간과 비용을 줄이기 위해 경량 철골구조를 채택했다. 설계비도 아끼다 보니 최소한의 구조계산을 했고, 시공비도 아끼려고 소요 물량도 최소화했다.

경주 울산지역은 겨울에도 눈 구경하기 어려운 지역이다. 오더라도 하루가 못되어 녹을 정도로 온난한 곳이다. 그러나 사고 당일 70여cm에 이르는 기록적인 폭설이 내렸다. 보통 눈구름은 서쪽에서 몰려오지만, 이 날은 하필 동쪽 바다에서 형성되어 물기가 많아 무거운 습설이 내렸다. 건물의 기능 설계 시공 상의 여러 문제들, 그리고 기후까지 복합적인 이유들이 겹쳐져서 최종적인 붕괴가 일어났다. 게다가 그야말로 설상가상, 하필이면 그 시간 대규모 행사를 그 장소에서 치렀기에 대형 인명피해가 난 것이다.

결정적인 파국은 한두 원인 때문에 일어나지 않는다. 수많은 원인들이, 그것도 결정적인 원인들이 쌓이고 겹쳐서 일어난다. 건물의 붕괴가 10여 개 잘못들의 결과라면, 한 사회의 파국은 그보다 몇 십 배 복합적인 원인들이 있을 것이다. 전쟁이나 망국과 같은 국가적 파국에는 몇 백 배 더 복합적이고 결정적인 잘못들이 작용한 결과로 보아야 한다. 한 사람의 일생에서 죽음이란 모든 것을 끝내는 결정적인 파국이다. 사회적으로 인정받은 한 사람이 삶을 끊었다면, 얼마나 많은 갈래의 갈등과 고통들이 있었을까? 우연한 사고는 없다. 모든 파국은 많고 적은, 크고 작은 원인들이 얽혀진 결과일 뿐이다. 파국이란 불가역적인 현상이어서, 일단 벌어진 결과는 되돌릴 수 없다. 잘못에 대한 대가를 치를 뿐이다. 그럼에도 이를 방치하면 또 다른 원인들이 되어 더 거대한 파국을 불러올 것이기에, 이 개별적인 파국에 이르기까지 작용하고 누적된 원인들을 알아야 한다.

파국이론의 교훈을 뒤집어보자. 한 개인이나 사회가 안정적이고 지속적인 발전을 이루려면 여러 갈래의 각성과 노력이 합쳐져야 한다. 또한 그러한 내공이 쌓인 개인과 사회만이 외부의 충격을 흡수하여 새로운 평형 상태를 이룰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파국이 일어난 후에야 원인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현재의 파국은 눈에 보이기 때문에 되풀이를 막을 수 있다. 그러나 지금도 어디선가 누적되고 있는 새로운 파국의 뿌리는 어떻게 발견할 수 있고 예측할 수 있을까? 설명은 가능하지만 실천은 어렵다.

김봉렬 한국예술종합학교 총장·건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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