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공무원 간첩' 증거조작 사건에 연루된 국가정보원 권모(51) 과장의 자살 시도는 형사처벌 될 수 있다는 불안감과 검찰 조사 과정에 대한 불만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보인다. 그러나 국정원은 권 과장이 자살을 시도하기 12시간 전 특정 언론사와 인터뷰를 하도록 주선한 것으로 알려졌으며, 인터뷰 당시 극도의 불안 상태를 보인 그가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사실상 방치한 것으로 드러나 그 배경을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24일 경찰과 검찰 등에 따르면 권 과장은 지난 22일 오후 1시 30분쯤 경기 하남시 하남대로에 있는 한 빌딩 출입문 앞에 주차된 승용차 안에서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됐다. 발견 당시 차량 조수석 바닥에는 철제 냄비 위에 재만 남은 번개탄이 있었고, 차 안에는 연기가 자욱한 상태였다. 권 과장은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급대에 의해 인근 강동경희대병원으로 옮겨졌지만 상태가 위중해 오후 6시쯤 서울아산병원 중환자실로 이송됐다. 119구급대 관계자는 "유리창을 깨서 차량 문을 열어야 할 정도로 급박한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권 과장은 현재도 의식불명 상태이며 국정원이 신변 보호 중이다.
권 과장은 지난 21일 오후 7시30분쯤 자신의 매형에게 '찜질방에 간다'며 차를 빌려 타고 나간 것으로 경찰은 파악하고 있다. 권 과장은 지난 19일 첫 소환 이후 이날까지 사흘 연속 검찰 조사를 받았다. 이날은 조사 도중 담당검사에게 수사에 대한 불만을 토로하고 오후 3시쯤 검찰청사를 나간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검찰이 대공수사국 직원들을 위조범으로 몰아가려 해 심한 모욕감을 느꼈다며 거세게 반발했다고 한다. 검찰은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하기는 했지만 (국정원장의) 동의 없이 체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권 과장은 유서에서도 "검찰이 한쪽으로 방향을 잡은 채 수사를 했으며 목숨을 걸고 일하는 국정원 요원들의 명예를 실추시켰다"는 말을 남긴 것으로 알려졌다.
권 과장은 매형의 차를 빌려 타고 바로 언론사와 접촉한 것으로 보인다. 보도에 따르면 인터뷰는 21일 오후 11시30분부터 다음날 오전 1시30분까지 2시간 동안 이뤄졌다. 이후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권 과장의 행적은 확인되지 않았다. 그는 인터뷰에서 "검찰은 (실체가 아닌) 법만 보면서 법의 잣대만을 들이대 (국정원의) 조직적인 위조 활동으로 몰아붙이고 있다"며 수사에 강한 불만을 드러냈다. 또 "나는 용도 폐기가 돼 이제 할 수 있는 게 없다. 그나마 연금 하나 보고 살아 왔는데…"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기도 했다.
하지만 왜 현직 국정원 직원이 수사 중인 사안을 두고 특정 언론사와 접촉을 했는지는 의문이다. 국정원직원법 17조는 직무와 관련된 사항을 공표하려는 경우 원장의 허가를 사전에 받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비밀엄수를 철칙으로 삼는 대공수사국에서 20년 넘게 근무한 그의 경력을 보더라도 언론에 대고 사적인 감정을 토로한 것은 이해하기 힘든 대목이다.
검찰 안팎에서는 "국정원이 권 과장을 이용한 언론플레이에 나섰을 개연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보고 체계가 확실한 국정원 조직의 특성을 보더라도 권 과장의 언론 접촉이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것이라고 보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인터뷰 이후 권 과장이 자살을 시도하기까지 국정원이 신병을 관리하지 못한 데 대해서도 비판이 제기된다. 한 검찰 관계자는 "주요 피의자의 경우 검찰 조사 후 진술 내용까지 꼼꼼하게 챙겼으면서도, 권 과장의 경우 신병 관리를 하지 않은 채 방치를 했다는 건 이해하기 힘들다"고 말했다.
하남=김기중기자 k2j@hk.co.kr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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