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후 7시쯤 서울 종로구 낙원동의 한 모텔방. 동성애 상대자와 만남을 기다리던 김모(21)군은 경찰이 들이닥치자 "무슨 일 때문에 그러냐"며 거세게 항의했다. 그러나 경찰은 김군의 소지품에서 신종 마약 '러쉬'를 찾아냈고, 김군은 이내 고개를 떨궜다. 군 입대를 위해 휴학 중이던 대학생 김군과 이날 만나기로 했던 부동산 중개업자 김모(33)씨도 다음날 오전 광진구 자택에서 러쉬가 발견돼 체포됐다. 이들은 동성애자들이 주로 이용하는 인터넷 카페와 채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러쉬를 구입하고 만나기로 약속한 것으로 알려졌다.
인터넷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마약을 손쉽게 구할 수 있는 통로로 활용되면서 관련 범죄가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대학원생, 연구원 등 인터넷 활용에 익숙한 고학력층이 마약에 손대는 사례가 늘고 있다.
서울 종로경찰서는 지난해 10월~올해 3월 국내 유통이 금지된 신종 마약을 판매한 백모(43)씨와 이를 사서 투약한 김군 등 49명을 불구속 입건하고, 필로폰을 복용한 송모(43)씨 등 2명을 구속했다고 24일 밝혔다. 판매책인 백씨는 지난해 10월 영국의 인터넷 사이트를 통해 러쉬가 6g씩 들어간 약품 80병을 구매한 뒤 동성애자들이 활동하는 인터넷 카페에 "러쉬를 흡입하면 성관계 시 흥분을 높여 준다"고 광고해 18명에게 되팔았다. 다른 투약자들은 직접 인터넷 사이트 '구글'을 통하거나 외국 여행 중 마약을 구입했다. 담배처럼 피우는 '허브'를 구매ㆍ흡연한 이들도 붙잡혔는데 구입 경로는 마찬가지로 인터넷이었다. 경찰 조사결과 붙잡힌 투약자 중 상당수는 명문 사립대 휴학생과 대학원생, 박사 출신 연구원 등 고학력자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서울서부지법은 지난해 11월 인터넷 사이트에서 향정신성 의약품 스틸녹스 졸피뎀을 구입한 유흥업 종사자 정모(32)씨와 이를 투약한 회사원 노모(28)씨에 대해 마약류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각각 300만원, 1,000만원의 벌금형을 선고했다. 이들은 모두 약품을 판매하는 인터넷 사이트에서 손쉽게 마약을 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해 4월에는 다이어트에 효과가 있다는 허위 인터넷 광고를 믿고 필로폰을 구입ㆍ투약한 주부와 여대생, 여고 중퇴생 등 7명이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경찰청에 따르면 2012년 5,105명이었던 전국의 마약 관련 검거 인원은 2013년 5,459명으로 6.9%(354명) 증가했다. 인터넷을 통한 마약 유통이 늘어난 것이 관련 범죄 증가 이유로 꼽히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과거 조폭들이 주로 유통하던 마약을 최근 인터넷으로 쉽게 접하게 되면서 학력, 연령 등과 관계 없이 전국적으로 마약 범죄가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곽대경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인터넷은 익명성이 있고, 누구나 광범위하게 접근할 수 있어 이를 이용해 마약에 손을 대는 사례가 증가하는 것 같다"며 "경찰뿐 아니라 유관 기관이 관련 정보를 유기적으로 공유하는 등의 감시 시스템이 필요하고 네티즌들과 국민들 모두 마약에 대한 경각심을 갖고 신고하는 등의 전 사회적 협력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안아람기자 oneshot@hk.co.kr
이성택기자 highnoon@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