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해커 운동체인 '어나니머스(Anonymous)'가 널리 알려진 시기는 2003년이다. 그 해 정부, 종교, 기업 관련 웹사이트를 공격한 해커들이 스스로 어나니머스의 일원임을 표방함으로써 사이버 상에서 정치ㆍ사회적 목적을 위해 해킹하는 '핵티비즘(Hacktivism)' 집단으로서 정체성을 획득했다. 다만 체계적 조직이라기 보다는 그때그때 행동에 따라 호응하는 해커들이 이합집산하여 움직이는 사이버 상의 부정형 네트워크로 볼 수 있다.
■ 위키백과엔 이 운동체에 대해 '지시보다는 오히려 발상에 따라 작동하는, 매우 느슨하고 분산된 명령 구조를 가진 하나의 인터넷 상의 모임'이라는 서술도 있다. 그러나 미국 배우 톰 크루즈를 통해 유명세를 탄 '사이언톨로지'에 대한 공격과 2010년 위키리크스 지지 운동, 2011년 아랍 민주화 지지 운동 등을 통해 현실에 만만찮은 영향력을 발휘했다. 2012년엔 타임지의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꼽히기도 했다.
■ 2011년 '로스 제타스(Los Zetas)' 납치 사건은 어나니머스의 힘을 잘 드러낸 사례다. 당시 멕시코 갱조직인 제타스가 경쟁조직원들을 납치했는데, 그 중 한 명이 어나니머스의 단원이었다. 그러자 어나니머스는 '그를 석방하지 않으면 제타스의 모든 정보뿐 아니라, 제타스와 결탁한 정부관리, 정치인, 경찰, 택시운전사 등의 정보를 모두 공개할 것'이라며 일전을 선언했다. 다음날 해당 단원은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고 석방됐다고 한다.
■ 핵티비즘은 양날의 칼이다. 위키리크스처럼 정상적으론 접근이 어려운 거대 부조리를 폭로해 개선과 진보를 도모할 수 있다. 반면 단순한 사이버테러로 전락할 위험도 크다. 지난해 '어나니머스 코리아'라고 밝힌 해킹그룹은 청와대 홈페이지를 공격해 '통일대통령 김정은 장군님 만세'같은 장난 문구가 담긴 화면을 삽입해 적잖은 우려를 샀다. 최근엔 어나니머스를 자칭한 한 트위터가 '세금을 낭비하고 언론을 왜곡했다'는 막연하고 유치한 이유로 한국 정부에 대한 공격을 선언해 파문을 빚고 있다. 어나니머스의 자정과 긍정적 발전을 바란다.
장인철 논설위원 icjang@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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