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는 무엇에 좌우되는가. 인물인가, 정책인가, 구도인가. 아니면 바람인가. 모두가 영향을 미치지만, 구도가 단연 결정적이다. 고정 표가 많은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쪽에서 한 명이 나오고, 저쪽에서 여러 명이 나오면 이쪽이 이긴다. 역대 선거결과를 보면 구도의 중요성을 쉽게 알 수 있다.

1987년으로 가보자. 독재체제를 종식시키자는 민주화 열망으로 직선제 개헌이 이루어졌고, 12월 대선이 치러졌다. 흐름상 민주화 진영이 권력을 잡았어야 했다. 그러나 노태우 민정당 후보가 겨우 36.6%(828만 표) 득표로 이겼다. 야권의 김영삼, 김대중 후보 모두 출마했기 때문이다. YS 28.0%(633만 표), DJ 27.0%(611만 표)로 둘이 합하면 55%나 됐지만, 단일화 실패로 권력을 헌납해야 했다. 1992년 대선에선 망국적 지역감정을 부추긴 초원복국집 사건이 터졌다. 여당 후보인 YS는 TV토론마저 거부했다. 3당 합당이 야합으로 비난 받았다. 그러나 승자는 YS였다. 부산ㆍ경남의 YS와 경북의 민정계, 충청의 JP가 손잡은 구도가 이긴 것이다.

1997년 대선은 구도의 위력을 더욱 실감나게 보여주었다. 외환위기로 IMF 구제금융을 받는 나라의 처지만으로도 정권이 교체돼야 했다. 거기에다 이회창 한나라당 후보는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치명상을 입었다. 이인제 의원이 한나라당을 탈당, 18.9%(492만 표)나 얻었다. DJP공조까지 이루어졌다. 그러고도 DJ는 겨우 1.5%(39만557 표)를 이겼다. 만약 DJP 공조가 깨지거나 이인제 의원이 불출마했다면, 결과는 딴판이었을 것이다. 2002년 대선도 그랬다. 노무현, 정몽준 후보가 각각 출마했다면, 이회창 후보가 아들의 병역 문제, 호화빌라 사건, 며느리 원정출산 의혹 등에도 불구하고 이겼을 가능성이 컸다.

구도의 변화가 없는데다 노무현 정부에 대한 비판이 거셌던 2007년 대선에서는 이명박 후보가 압승했다. 2012년 대선에서는 문재인ㆍ안철수 후보의 연대가 이루어졌지만, 연대 과정의 불협화음과 후유증으로 지지표가 분산돼 야권이 3.6%(108만 표) 차이로 졌다.

역대 총선과 지방선거 결과도 크게 다르지 않다. 구도에서 불리한 후보나 정당이 이긴 경우는 드물었다. 이번 지방선거를 앞두고 김한길 민주당 대표와 안철수 의원이 통합 신당을 만들기로 한 것도 구도를 염두에 둔 것이다. 새 정치를 통합의 기치로 내걸었지만, 그 이면에는 '분열은 패배'라는 현실적 계산이 있었을 것이다.

근데 희한한 상황이 벌어졌다. '여야 1대 1 구도'를 만드는 통합을 해놓고, 구도를 불리하게 만드는 결정을 했다. 새정치와 통합의 고리로 기초선거 무공천을 택한 것이다. 아마 박근혜 정부가 경제민주화, 복지 강화, 국민대통합 등 대선 3대 공약에다 기초선거 무공천 약속까지 지키지 않은 점을 부각시키는 '거짓 대 진실' 프레임을 쓰려는 전략일 것이다.

명분이 그럴듯해 시도지사 선거에서는 유용하지만, 기초단체장이나 기초의원 선거에서는 치명상을 입을 수 있다. 특히 적게는 수십 표로 당락이 갈리는 서울이나 수도권에서는 아우성들이다. 기초선거 도전자들이나 야권 지지층은 야권후보 난립과 기호 2번 상실의 위험성을 경고하고 있다. "새누리당이 응하지 않고 공천하는 마당에 무공천으로 패배하는 것은 바보나 하는 짓" "새정치의 아젠다가 수없이 많은데 기초선거 무공천에만 집착해야 하느냐"는 지적도 있다."안철수 의원 자신은 부산에서 승부하지 않고 노원에서 출마하고서 수많은 야권 후보들을 사지에 몰아넣고 있다"는 비아냥도 나온다.

그래도 신당 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특히 안 의원이 완강하다. 무공천 철회는 곧 새정치의 포기로 인식하는 듯하다. 선거는 결과가 말한다. 만약 신당이 시도지사 선거에서 이긴다면, 기초선거 결과에 관계없이 안 의원은 승자가 될 것이다. 그러나 기초선거도, 시도지사 선거도 패한다면 안 의원은 그 책임을 모두 안고 사라져야 할지도 모른다. 굳이 지방선거에서 안 의원이 자신의 명운을 거는 도박을 할지, 지켜볼 일이다.

이영성 논설위원 leey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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