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에 띄는 초능력을 지니지 않았다. 최첨단 무기로 무장하지도 않았다. 20㎞를 30분만에 달릴 정도로 남들보다 월등하게 튼튼한 몸이 별나다면 별나다. 웬만한 탄환은 다 막아내고 종종 표창처럼 사용하는 방패가 있다지만 위력적이지 않다. 그저 원칙을 중시하고 쉬 몸을 던져 목표에 이르려는 우직함이 매력이자 강점이다.
할리우드 영화 '캡틴 아메리카: 윈터 솔져'의 영웅 캡틴 아메리카(크리스 에번스)가 외계인을 연상케 하거나 특별한 돌연변이를 떠올리게 하는 캐릭터는 아니다. 특수 혈청을 맞고 2차 세계대전에서 맹활약하다 70년 동안 냉동으로 잠들어있던 삶이 그나마 특이하다.
아주 유별나지 않은 인물이라서 일까. 이 영화의 전편('퍼스트 어벤져')은 영문 원제 '캡틴아메리카 : 퍼스트 어벤져'와 달리 제목에서 캡틴 아메리카를 지운 채 국내 개봉했다. '어벤져스'(2012)가 캡틴 아메리카의 존재를 알리면서 시리즈 2편인 이번 영화에서야 제 이름을 찾았다. 신장개업 하듯 국내에 소개되는 이 영화는 전편보다 풍부해진 물량공세와 더 다듬어진 이야기로 호객한다.
영화는 외계인의 뉴욕 침공에 맞섰던 각종 영웅들의 활약상을 그린 '어벤져스' 이후 이야기를 다룬다. 캡틴 아메리카란 별칭을 지닌 역전의 용사 스티브 로저스가 중심이다. 로저스가 소속돼 활약하고 있는 국제평화유지기구 '쉴드' 내부에서 벌어지는 음모를 에너지로 이야기와 액션을 발전시킨다. 로저스와 블랙 위도(스칼릿 조헨슨) 등을 지휘하는 쉴드의 국장 닉(새뮤얼 잭슨)이 치명적인 상황에 처하면서 영화는 출발선에 선다. 속내를 알 수 없는 쉴드 수장 피어스(로버트 레드퍼드)의 행보가 물음표를 만들고 음모에 의해 제거대상이 된 로저스의 위급 상황이 긴장감을 조성한다. 영화가 절정으로 치달으며 쉴드를 장악한 비밀 조직의 실체가 드러나고 이에 맞서는 로저스 등의 활약도 최고점을 향한다. 로저스와 의문의 악인 윌터 솔져(버키 반즈)의 감춰진 인연이 정서적 갈등을 촉발하기도 한다.
볼거리로 충만한 영화다. 로저스가 좁은 엘리베이터 안에서 특수요원 10명을 때려눕히는 모습,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차량들이 빚어내는 아찔한 추격 장면, 거대한 비행 물체 '헬리 캐리어'의 모습 등이 쉴 틈 없이 시신경을 자극한다. 로저스는 적과 마주칠 때마다 주저 없이 달리고 (방패로)막고 때리고 (발로)차는데, 이런 그의 동작은 영화의 매 액션 장면들과 정서적으로 맞닿아있다.
대낮 워싱턴 도심에서 닉이 정체불명의 요원들에게 저격 당할 때도, 윈터 솔져가 괴력으로 손쉽게 사람을 죽일 때도 영화는 일말의 망설임이 없다. 오직 전진 밖에 모르는 탱크처럼 뚝심 있는 액션으로 관객들을 몰아붙인다. '아이언맨' 시리즈와 '토르' 시리즈, '어벤져스' 등으로 할리우드 신흥 강자로 떠오른 마블 스튜디오의 저력을 새삼 체감할 수 있는 블록버스터다. 상영시간(136분)이 이야기의 작은 부피에 비해 지나치게 길다. 액션의 향연이 과잉으로 느껴진다.
한국인이라면 유독 좋아할 만한 장면이 있다. 오랜 시간 냉동보관 됐던 로저스는 변화한 세상을 따라잡기 위해 그 동안 놓친 주요 항목들을 수첩에 적어놓는다. 그 수첩 상단에는 반가운 영문이름 박지성(Ji Sung Park)이 적혀있다. 최근 한국 시장을 중시하는 마블 스튜디오의 영악한 마케팅 전략이 만들어낸 장면일까. '웰컴 투 콜린우드'(2003) 등을 만든 조ㆍ안소니 루소 형제 감독이 연출했다. 26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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