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오후 1시쯤 경기 평택항에서 서쪽으로 80㎞ 가량 떨어진 서해상 격렬비열도 인근. 천안함 피격 사건 4주기를 일주일 앞둔 이날 바람이 세찼지만 의외로 바다는 잔잔했다. 다만 군함 몇 척이 수면을 가르며 몇 가닥 파문을 남길 뿐이었다. 멀잖은 백령도 인근 해역에서 4년 전 천안함과 46용사가 북한군 잠수정이 쏜 어뢰에 맞기 전에도 바다는 지금처럼 평온했다.
"작전 개시, 전투 배치!" 해군 이지스구축함 세종대왕함(7,700톤급) 함교에서 훈련 명령이 떨어졌다. 함수를 북쪽으로 튼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배 왼편에서 적 수상함으로 추정되는 선박이 출현했다. 가상 상황이다. 승조원들은 곧바로 헬멧과 구명 조끼를 착용하고 각자 맡은 위치로 뛰어갔다.
오전 9시30분쯤 평택항을 떠난 해군 함정은 7척. 지휘함인 세종대왕함을 필두로 한국형 구축함인 양만춘함(3,200톤급), 신형 호위함인 인천함(2,300톤급) 등 3척이 앞장섰고 구형 호위함인 제주함(1,800톤급)과 초계함인 성남함ㆍ제천함(이상 1,200톤급), 유도탄 고속함 조천형함(450톤급) 등 4척이 뒤따랐다.
"전 함정, 사격 준비!" 세종대왕함장인 양민수 대령이 명령을 내리자 함대 후미 4척부터 사격이 시작됐다. 호위함에 탑재된 76㎜ 함포가 먼저 불을 뿜었다. 총신에 '3ㆍ26 기관총'이라는 문구가 새겨진 K-6 기관총도 발사됐다. 천안함에서 산화한 고 민평기 상사의 어머니 윤청자(71)씨가 기탁한 돈으로 구입된 이 무기는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2함대 소속 초계함 9척에 장착됐다.
10여분 뒤 선두 3척의 함포 사격이 이어졌다. 세종대왕함 함수에 실린 127㎜ 함포탄 4발이 굉음과 함께 3초 간격으로 발사됐다. 최대 사거리가 24㎞인 이 함포는 분당 최대 20발을 쏠 수 있다. 사격이 정확했는지 함대에서 10㎞ 가량 떨어진 곳의 적 함정 가상물체는 침몰 판정을 받았다.
오후 1시35분쯤 성남함 음파탐지기가 적 잠수함으로 판단되는 물체를 포착했다는 정보가 다시 세종대왕함에 전달됐다. "총원 전투 배치!" 함장의 명령과 함께 장병들이 대(對)잠수함 대형으로 신속히 전환했다. "폭뢰 투하 준비, 투하!" 세종대왕함과 양만춘함, 인천함 등이 함미 하단의 폭뢰를 1발씩 수중으로 떨어뜨리자 5초쯤 뒤 폭음과 함께 높이 20~30m의 물기둥이 치솟았다.
이날 출항은 적 수상함과 잠수함이 NLL을 넘어 침투한 상황을 가정해 실시된 '천안함 4주기 해상기동훈련'의 일환. 기자가 이날 탑승한 세종대왕함에서 맨 먼저 눈에 띈 것도 "나의 전우를 건드리는 자, 죽음을 각오하라"는 문구였다. 감시를 맡은 갑판 수병이든 전투지휘실에서 레이더 앞을 지키는 간부든, 4년 전의 치욕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듯 눈에서는 형형한 빛이 나왔다.
길이 166m, 승조원이 300여명에 이르는 세종대왕함은 2010년 한국형 이지스함 3대 중 처음 배치된 함정이다. 건조 비용으로 1조원이 들어갔다. 이 배에 실린 레이더 SPY-1D는 1,000여개의 표적을 동시에 탐지ㆍ추적하고 그 중 20여개를 동시 공격할 수 있다. 이날도 동해상에서 북한이 쏜 스커드 미사일과 방사포 등을 탐지하는 임무를 수행하다가 투입됐다. 함대공ㆍ함대지 유도탄과 청상어ㆍ홍상어 등 국산 대잠 어뢰가 실려 있고, 해상작전헬기 링스도 2대까지 실을 수 있다.
해군본부 기획관리참모부 1차장인 최양선 준장은 "우리 해군은 천안함 사건 뒤 한층 성능이 향상된 차기 호위함과 유도탄 고속함을 실천 배치했고 해상 초계기의 성능 개량과 추가 도입을 추진하는 등 통합 전투능력을 갖추기 위한 전력 보강에 매진 중"이라고 말했다.
평택=권경성기자 ficcione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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