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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과 단둥의 추억

입력
2014.03.23 1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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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일로 천안함 폭침 4주기를 맞는다. 4년 전 당시 중국 베이징 특파원이었던 기자가 천안함 사건 소식을 처음 접한 곳은 중국 랴오닝성 단둥이었다. 춘분이 지난 3월 하순에도 눈이 발목까지 차는 북한 라진항과 맞닿은 중국 지린성 훈춘을 거쳐 신의주와 연결된 황금평 인근 단둥 현지 분위기를 취재하던 중이었다. 당시 북중 국경지대에는 양국 간의 경제협력 바람이 거세게 불며 북한의 중국식 개혁ㆍ개방에 대한 기대감이 넘쳐나고 있었다.

김정일의 방중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소문에 단둥역이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중롄호텔에는 김정일을 태운 특별열차가 국경을 통과하는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는 기자들로 북적거렸다. 기자 또한 김정일의 방중 시점에 맞춰 북중 간 경제협력 현장취재 기획기사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러나 김정일을 태운 특별열차는 끝내 나타나지 않았고, 대신 천안함 폭침이라는 충격적 뉴스를 접하게 되었다.

김정일이 북중 경협을 통해 대내외적으로 북한의 개혁ㆍ개방 노선을 분명하게 보여주고 지지부진한 남북관계에도 변화를 예고하는 역사적인 순간을 취재하려던 기대감은 산산 조각났다. 바로 직전까지만 해도 라선과 신의주 지역에서 활동하는 중국 무역상들과 북한 출신 중국동포들은 북한의 개혁ㆍ개방에 대한 전망과 기대를 흥분된 목소리로 전하고 있었다. 북중 경협의 열매를 중국만이 챙기게 해서는 안 되며, 북한이 개성공단 외의 지역도 문을 열도록 우리 정부가 적극 유도해야 한다는 주문이 많았다.

그러나 천안함 사태는 이 모든 기대와 전망을 일거에 깨뜨려버렸다. 이후 연평도 포격사건, 3차 핵실험, 장거리미사일 발사의 특대형 도발로 이어진 일련의 사태를 보며 북한에 대한 기대감은 침몰한 천안함처럼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북한이 왜 개혁ㆍ개방의 호기를 놓치는지 안타까움을 넘어 납득할 수 없는 북한 속사정에 대한 불신과 의혹은 분노로 변해갔다.

그렇게 한동안 닫혀있던 북한에 대한 관심과 희망, 기대감을 최근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 대박론이 다시금 일깨워줬다. 아직은 당위적인 선언에 그쳐 구체적 실천방안을 놓고는 논란이 무성하다. 하지만 범국민적으로 통일에 대한 기대와 관심도를 끌어 올렸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통일은 국민을 하나로 결집시키는 효과가 그만큼 크다. 통일 방식에 비판적일 수는 있어도 통일 자체에 토를 달고 반대하는 사람은 없다.

'큰 것(大體)을 먼저 취한 후 작은 것(小體)을 포용'하는 동양 철학적 행동전략은 언제든 먹힌다. 통일 논의는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선점효과가 크지만, 남북관계에서도 향후 관계 국면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가는 데 유리해 보인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남북관계에 진전이 없는 통일 대박론은 허상일 수밖에 없다. 그 핵심은 북한의 진정성 있는 행동에 달려있다. 천안함 46용사의 희생을 헛되지 않게 하려면 5ㆍ24 조치 해제에 앞서 북한의 반성이 필요하다. 특히 올 들어 북한의 대화공세가 남북관계의 전면적인 국면 전환보단 이를 지렛대 삼아 제재국면을 벗어나고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위함이라면 더욱 신중할 필요가 있다.

박 대통령이 28일 독일 드레스덴에서 발표할 '통일 대박'2탄은 그래서 더 의미가 크다.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기반으로 한 포괄적인 대북 지원과 협력방안 등을 담은 구상이 포함될 것이라고 한다. 물론 북한은 이 모든 구상과 제안들을 세심히 살핀 후 행동에 나설 것이다. 그것이 남북정상회담의 깜짝 제안이 될 수 있고, 반대로 핵 실험 재개가 될 수도 있다.

박 대통령 집권 2년 차 남북관계 진전을 위한 강한 의욕도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서두를 이유는 없다. 독일 통일의 경험에서 보듯 통일은 방법도 중요하지만 통일전략의 일관성이 더욱 빛을 발한다. 국민적 합의를 통해 착실히 통일 대강을 마련하고, 정권교체와 상관 없이 일관되게 추진되는 대북ㆍ통일 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큰 것에 서서 작은 것을 포용해야 한다.

장학만 여론독자부장 local@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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