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을 정리하다 인기척을 느꼈다. 흠칫 놀라 고개를 돌려보니, 휴, 옷걸이에 걸어놓은 외투다.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설거지를 하다 등 뒤가 심란해 돌아보면 식탁의 빈 의자가 내 쪽을 향해 놓여 있다. 책상에서 일을 하다 뒤통수에 시선을 느껴 돌아보면 한쪽 모서리에 첩첩 쌓아두어 사람 키만큼 높아진 책 무더기다. 뭐야. 내 옷과 의자와 책을 기웃거리는 유령이라도 사나. 새로 이사 온 집은 30년 전에 지어진 주택의 1층이다. 주위를 높은 건물들이 둘러싸고 있어 빛이 잘 들지 않는다. 몇 년 전 대대적인 수리를 했다지만 세월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고, 창고와 뒤란에 먼저 주인들이 잊고 간 물건들이 눈에 띄기도 한다. 그 동안 이 집에는 몇몇 가족이 거쳐 갔다. 어떤 사람들이었을까. 흉흉한 일이 있던 게 아니라도, 타인의 과거가 스민 자리에 이제 또 내 삶을 부리는구나 생각하니 어깨가 살짝 움츠러든다. 독일어에는 'unheimlich'라는 단어가 있다. 으스스하고 섬뜩하다는 뜻인데, 어근이 되는 'heim'이 바로 '집'이다. 친숙해야 할 보금자리라 또한 그만큼 낯설고 기이하게 다가올 수 있는 거겠지. 하긴, 요즘 시대에 친숙함만이 묻어 있는 집에서 평생을 사는 이들이 몇이나 될까. 누구나 이사를 다닌다. 타인의 흔적 위에 내가 자리를 잡고 또 나의 흔적 위에 타인이 둥지를 튼다. 그 흔적들도 일종의 유령이라면, 우리는 늘 유령과 동거하고 있는 게 아닐까. 시인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