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이 엄중한데 대학생들이 정기적으로 모여 치킨을 뜯고, 농사를 지으며, 애니메이션 더빙을 즐긴다면 한심해 보일까. 하지만 이들을 그저 '한가한 대학생'으로 치부하기엔 그 전문성이 놀랍다.
지난해 3월 연세대에는 '피닉스'라는 동아리가 발족했다. 이름도 생소한 치킨 동아리다. 치킨 전문가 '치믈리에'가 돼 한국의 치킨을 세계인들에게 알리는 게 이들의 목표다. 전문성을 기르기 위해 국내 유일의 치킨 교육기관인 'BBQ치킨대학'에서 제조법을 배웠고 치킨집 탐방 후 닭의 크기, 기름 종류, 튀김의 색 등을 평가하는 '테이스팅 노트'로 데이터베이스를 만들고 있다.
20일 서울 연세대 앞 치킨집에서 만난 이들은 "여성이라도 1인 1치킨은 기본" "한 달에 치킨 40마리를 먹은 적도 있다" "치렐루야"라는 말로 치킨에 대한 애정을 표현했다. 창립멤버 권순우(25)씨는 "지난해 첫 회원 모집 때 200명이 넘게 몰려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은 인터넷을 통해 창립멤버 7인의 치킨 먹방을 보는 것으로 대신했다"고 자랑했다. 현재 회원수는 300여명, 매주 목요일 정기모임 참여인원은 대략 30여명이다.
농사에 대한 애정으로 뭉친 이화여대 '스푼걸스'도 있다. 스푼걸스라는 이름은 처음 농사를 지을 때 농기구가 없어 숟가락으로 땅을 일군 데서 유래했다. 활동 4년째인 올해 신입회원 10명을 받아 현재 회원 수는 18명이다.
이들은 캠퍼스 안의 조그만 텃밭에서 농약과 비료를 전혀 안 쓰는 친환경 농법을 구사한다. 봄 여름에는 상추 깻잎 등 잎채소, 가을에는 배추 농사를 짓는다. 2012년에는 직접 재배한 배추로 김장을 담가 마포구 독거노인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도시에서 자라 농사는 동아리에서 배웠다는 김지은(22)씨는 "농사를 지으면서 환경에도 관심을 갖게 됐다"며 "지난해 학교 식당에서 일회용 젓가락 사용 자제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고려대 '온보이싱'은 전국 4곳, 수도권에서는 유일무이한 성우 동아리다. 회원 10명은 영화와 애니메이션에 자신의 목소리를 입혀 영상을 재해석한다. 취미로 시작한 동아리이지만 열정만큼은 전문가 못지 않다. 평소에는 동아리 자체 교육팀의 지도를 받아 영상 더빙을 반복하면서 실력을 갈고 닦는다. 한 학기 두 번 여는 정기공연을 위해서는 한달 전부터 주 3, 4회 서너 시간씩 연습도 마다 않는다.
한상영(25)씨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내 목소리를 들려주는 게 더빙의 매력"이라고 말했다. 한 회원은 "온보이싱에서 활동하다가 방송사 성우로 입사한 사람도 있다. 즐기는 일이 직업이 된다면 큰 행복 아니겠느냐"며 웃었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우한솔 인턴기자(이화여대 언론정보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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