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모든 것을 바치는 헌신, 일본의 인기 소설가 히가시노 게이고(56)의 2011년작 은 전작이자 대표작인 을 빼닮았다. 천재 물리학자 유가와를 주인공으로 한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중 하나라는 공통점도 있지만, 무엇보다 미스터리의 열쇠가 '헌신'이라는 점에서 두 작품은 연작 같은 인상을 준다.
소설은 초등학생 교헤이가 여름방학을 맞아 혼자 바닷가 마을 하리가우라에서 여관을 운영하는 고모네로 향하는 것으로 시작한다. 교헤이는 기차 안에서 만난 유가와 교수를 고모네 여관으로 안내하고, 해저 광물 자원 개발과 관련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시골 마을을 찾은 유가와는 그곳에서 며칠 묵기로 한다.
교헤이와 유가와가 마을에 도착한 다음 날, 같은 여관 투숙객인 쓰카하라 마사쓰구가 항구 근처에서 변사체로 발견된다. 조사 결과 쓰카하라는 전직 경시청 형사였고, 사인은 일산화탄소 중독이었다. 쓰카하라가 아무런 연고도 없는 마을에서 살해된 뒤 버려진 이유는 무엇일까. 여관 가족이 숨기고 있는 비밀은 또 무엇일까. 도쿄경시청 수사과 관리관인 다타라는 유가와의 친구인 구사나기를 수사에 투입하고, 구사나기는 쓰카하라가 과거 수사했던 살인사건에 주목하면서 비밀을 하나씩 밝혀낸다.
작가는 범죄의 주체나 방식을 밝히는 데는 별 관심을 두지 않은 듯하다. 죽은 사람과 살아 있는 사람 사이에 숨겨진 내밀한 감정의 깊이가 이 소설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등장인물이 많지 않은 만큼 쓰카하라의 죽음에 여관 가족이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는 건 도입부만 읽어도 금세 눈치 챌 수 있다. 쓰카하라가 16년 전 체포했던 살인범 센바와 희생자 미야케 노부코의 관계를 추적하다 보면 독자는 결국 구슬픈 사랑 이야기와 마주하게 된다. 그렇게까지 할 수밖에 없었던 헌신적인 사랑.
작가는 "어른을 불신하는 소년과 논리적이지 못하다는 이유로 어린이를 싫어하는 유가와가 만난다면 어떤 화학 반응이 일어날까" 궁금했다지만, 사실상 두 인물의 관계는 소설의 중심에서 자꾸 비껴간다. 쇠락한 해변 마을을 배경으로 한 과학기술과 환경 문제 역시 마찬가지다. 552쪽이나 되는 책의 분량이 과하다는 인상을 지우기 힘든 이유다. 흥미로운 전개와 대화 위주의 쉬운 문체 덕에 책장이 술술 넘어가긴 하지만, 마지막에 드러나는 비밀과 반전을 위한 촘촘한 복선에 공을 더 들였으면 어땠을까 싶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작가 생활 25주년 기념작인 이 소설은 지난해 일본에서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에서 큰 성공을 거뒀다고 한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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