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겸 민관 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에서 제기된 '의원 입법이 규제를 양산한다'는 주장에 대해 '정치권이 규제 남발의 주범'이란 그릇된 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시대에 동떨어진 규제는 개선해야 하지만 시장환경의 변화로 등장한 폐해에 대해선 규제가 불가피하다는 지적이다. 더욱이 "의원 입법이 많아지는 추세 속에 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 신설을 잘 관리해야 한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은 의원의 입법권을 제약할 수 있다는 점에서 3권 분립 원칙에 대한 심각한 침해라는 지적이 잇따르고 있다.
전문가들은 의원 입법 남발 현상에는 동의하면서도 "의원 발의 법안이 모두 규제강화 법안으로 단정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6대 국회(2000~2004년) 의원 발의 법안은 1,912건에서 18대 국회(2008~2012년)는 1만2,220건으로 10배 정도 급증했다. 19대 국회에서 21일까지 발의된 의원 입법안도 벌써 8,809건에 달한다. 반면 의원 발의 법안 중 처리 법안은 18대 국회 1,663건(13.8%), 19대 국회 885건(10%)에 불과하다.
이준한 인천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1987년 민주화 이후 의원 발의 법안이 크게 증가했지만 입법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면서 "국회가 법안 내용을 자체 심의해 거르는 역할을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규제완화 여론이 높다면 민의의 대변자인 의원들이 입법 과정에 반영할 문제라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시민단체가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다 보니 의원들이 법안 발의를 남발하는 경향이 크다"면서 "앞으로 발의 법안 대비 처리 법안 비율로 평가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무분별한 규제완화 보다는 국가적 피해로 이어진 사례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시장변화에 따른 새로운 규제는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민주당 김기식 의원은 "종합금융회사 규제완화가 150조원이 넘는 혈세를 투입한 IMF외환위기를 가져왔다"면서 "지난해 동양그룹과 관련한 규제강화 움직임도 규제개혁위원회 반대로 수많은 피해자를 낳았다"고 지적했다. 또 의원들이 지역주민과 이해단체의 이익을 위해 규제완화 법안을 발의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점도 전날 규제개혁 점검회의가 정치 불신을 가중시켰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새누리당에서도 의원 입법에 대한 규제 심의장치 마련에 회의적 반응이 나왔다. 한 수도권 초선 의원은 "상임위 법안소위 전(前)단계에서 전문위원들이 중복규제를 검토하고 있는 만큼 국회가 자율적으로 할 일"이라면서 "의원이 법안 발의에 앞서 어디와 의논하는 것은 입법권 침해 소지가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이견이 크지 않은 규제완화 법안임에도 여야 정쟁으로 협상대상으로 묶여 상임위 법안소위의 충분한 심의 없이 졸속 처리되는 관행은 정치권이 지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김회경기자 hermes@hk.co.kr
김현빈기자 hbkim@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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