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말 한반도는 혼란에 휩싸였다. 열강들이 진출해 패권을 다퉜고 위기감에 빠진 조정은 개화정책으로 맞섰다. 시대의 격류 속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발아했다. 사회 변화에 재빠르게 발맞춘 신흥 경제 세력이 부상했고 이들은 자본을 축적하며 자본주의 체제의 서막을 열었다.
은 한국 자본주의 맹아기에 자본가들이 어떻게 등장했고 어떤 방식으로 부를 쌓았는지 조밀하게 추적한다. 한일은행장이었던 민영휘와 경성직뉴주식회사 사장 윤치소, 대지주 백남신, 호남은행장 현준호, 화신백화점 창업주 신태화 등이 부호가 된 과정을 동양척식주식회사 대출 자료와 기업사업계획서, 자산신용조사서 등을 통해 재구성했다. 초기 한국 자본주의 맨 얼굴의 복원이라 할 수 있다. 저자는 부산대 한국민족문화연구소 HK교수다.
구한말 자본가의 등장과 자본 축적 방식은 몇 가지 특징으로 요약될 수 있다. 권력과의 밀접한 관계가 자본 축적과 기업 설립으로 이어졌고 조선 경제가 일본제국주의 경제로 편입되는 과정에서 식민지 새 권력과의 유착도 생겼다. 초기 자본가들의 출신 신분은 몇 가지로 나뉜다. 국가의 녹을 먹다 시대 변화를 간파하고 상업으로 직종을 바꾼 관료 출신이 있었고, 관청에 물자를 조달하던 어용상인과 예전부터 상권을 장악하고 있던 시전상인, 객주, 행상, 소규모 제조업체를 경영하던 기술자 등도 자본가로 변신했다.
관료 출신 자본가는 민영휘가 대표적이다. 황주와 여주 목사 등을 지낸 아버지 민두호가 그랬듯 민영휘는 도승지와 평안도관찰사를 거치며 엄청나게 부를 끌어 모았다. 대한매일신보가 사설로 "국사가 지금에 이른 것은 민영휘ㆍ조병갑의 탐학이 한 원인"이라고 질타한 데서 알 수 있듯 부의 근원은 수탈이었다.
관직을 물러난 뒤 민영휘는 한일은행 경영에 참여하면서 경제계 실력자로 부상했고 그의 두 아들 대식과 규식은 직물과 광업, 철도 등 다양한 업종에 투자하거나 회사를 세워 재산을 불려갔다. 일제와의 유착이 날개 역할을 했다. 일제 국책금융기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폭발적인 기업 성장과 자본 축적이 가능했다. 민영휘 일가 등 대부분의 자본가들은 토지를 부의 원천으로 삼거나 늘어난 부를 토지에 재투자하는 방식으로 재산을 불렸다. 백남신은 1913년경 소작인 7,000명과 이들을 관리하는 마름 70여명을 거느릴 정도로 대지주였다.
건전한 방식으로 자본 형성을 기했던 민족자본가와 민족기업도 있었다. 경남 의령의 중소지주 출신 안희제는 경남 지역 지주 11명과 함께 합자회사를 만드는 등 민족경제권 건설을 목표로 기업들을 설립하고 운영했다. 서북지방 소액주주 200여명 모금으로 1908년 설립된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전통적 수공업 형태의 요업을 근대적으로 변화시키려 시도한 경우다. 안희제는 일제 탄압 속에 만주로 이주하며 민족자본가로서의 꿈을 접었고, 평양자기제조주식회사는 105인 사건으로 경영진이 체포된 뒤 영업 부진으로 결국 폐업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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