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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의 이야기/3월 21일] 주말 산책

입력
2014.03.20 1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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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마다 동네 산책을 하곤 한다. 그것은 내 일상의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다. 나는 고궁이나 이름난 공원보다는 동네의 굽이굽이 골목길과 살림집이 밀집한 주택가를 산책하는 걸 훨씬 좋아한다. 사람들의 신산한 살림살이가, 그들의 부단히 살아 있으려는 노고가 눈에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러면 내 마음이 정화되는 걸 느낀다. 내 산책은 그러니까 나른하고 느긋한 몽상보다는 삶에 대한 생생한 연민을 확인하는 시간에 가깝다. 지난 주말에도 길고 긴 산책을 했다. 어떤 집 앞에서는 전자대리점의 배달 차량이 서있는 보았는데, 짐작하기로는 새 냉장고나 새 세탁기를 들여놓는 게 아닐까 싶었다. 아니면 오래된 TV를 요즘 유행하는 대형 벽걸이 TV로 바꾸는 건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그 집의 아이들은 얼마나 좋을까. 우리 집에 거의 다다라서는 어떤 집 대문 앞에 책이 쌓여 있는 것을 보았다. 버리려고 내놓은 게 틀림없었다. 얼마 전 400여 권의 책을 버릴 만큼 책에 치여 사는 나는 다른 집에서 내놓은 책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는데 슬쩍 보니 국어사전과 옥편이 그 사이에 끼어 있는 게 아닌가. 그걸 이른바 '득템'을 해서 집으로 가지고 왔다. 집에 사전이 없는 것도 아닌데, 박용수 선생이 엮은 엄청나게 두껍고 최고로 좋은 우리말 활용사전도 있는데, 왜 사전을 가져가야겠다는 마음이 든 것일까. 한국어로 글을 쓰는 사람의 무의식에 도사린 토템과 터부인가? 정말 그런 건가?

김도언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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