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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주치의] <1>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김혜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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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이 주치의] <1>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김혜순 교수

입력
2014.03.20 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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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라리 내가 아팠으면…'

병원 신세를 져야 하는 아이를 지켜보는 부모의 심정은 다들 같을 것이다. 그렇지만 정작 아이의 몸에 이상이 생겼을 때 어떻게 해야 할지, 어느 진료과로 가야 할지 제대로 알지 못해 당황하는 부모가 많다. 그런 부모들을 위해 소아 전문의들로부터 최근 빈발하는 어린이 질환에 대한 설명을 들었다. 처음 만난 전문의는 김혜순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다.

10년 전 사춘기 소녀처럼 가슴이 봉긋하게 솟기 시작했을 때 아이 나이가 겨우 만 네 살이었다. 아직 어린데 가슴이 커지는 걸 이상하게 여긴 엄마가 혹시나 하고 병원을 찾았다. 자기공명영상(MRI) 촬영 결과 아이의 뇌 속에 자리잡은 종양이 확인됐다. 다행히 암으로 진행되지 않는 양성이었고 크기도 비교적 작았다.

김혜순(50) 이대목동병원 소아청소년과 교수는 곧바로 호르몬 치료에 들어갔다. 종양 때문에 뇌가 아이의 몸이 사춘기인 것으로 착각, 성호르몬을 내보내는 것을 억제하기 위해서다. 그대로 두면 사춘기가 너무 일찍 와 유아 시기에 성장이 멈출 수 있었다. 6, 7년 가량 이어진 호르몬 치료는 성공적이었다. 최근 만난 아이는 대견하게도 키가 160㎝ 가까이 자랐다.

성조숙증 등 아이들의 내분비질환을 치료하는 김 교수는 진료 분야의 특성상 아이의 부모와 민감한 이야기를 많이 나눈다. 그런데 자녀의 성(性) 발달을 대하는 부모의 반응이 각양각색이다. 김 교수는 사춘기를 앞둔 자녀를 키우는 부모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우리 아이의 성장 발달이 다른 아이와 다를 수 있다."

조기 사춘기 부르는 비만

사춘기는 뇌가 조절한다. 사춘기가 너무 일찍 오면 뇌에 문제가 있을지 모른다고 의사들이 추정하는 이유다. 뇌질환이 있으면 호르몬이 비정상적으로 분비돼 사춘기 시작점이 앞당겨질 수 있다. 김 교수는 "만 여섯 살 이전에 가슴이 커지는 등 성적 성장을 보이는 아이는 뇌에 문제가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사춘기를 또래보다 일찍 겪는 아이가 적지 않다. 유전, 비만, 환경호르몬 섭취, 생식기관의 이상 등 여러 가지가 원인으로 지적된다. 김 교수는 이 중 비만에 특히 관심이 많다. 비만인 아이는 그렇지 않은 아이보다 사춘기가 더 일찍 오는 경우가 많다.

"햄버거, 피자, 콜라 등 서구식 음식을 섭취함으로써 많은 열량이 몸에 들어오지만 활동량은 그에 미치지 못해요. 소비되지 않고 몸에 남은 열량이 지방세포와 결합해 피하지방으로 축적됩니다. 이렇게 쌓인 피하지방이 호르몬 분비에 영향을 미쳐 사춘기를 앞당기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내 아이가 평균이 아니라니…"

사실 사춘기는 전세계적으로 빨라지는 추세다. 10년마다 2, 3개월씩 당겨진다. 한국도 여성의 평균 초경 연령이 1960년대에는 15~17세였으나 1980년대엔 14세, 최근에는 12.8세를 기록했다. 대개 사춘기 시작점에서 2년 정도 지나면 초경을 한다. 한국 여아는 만 10~11세, 남아는 11~12세에 사춘기를 시작한다.

"가슴이 나오기 시작한다고 초등학교 4학년 여자 아이를 데려온 부모가 있었어요. 딸의 사춘기가 시작됐고 정상적인 발달 과정이라고 설명했더니 깜짝 놀라는 거예요. 부모 세대의 사춘기 연령만 생각하고 너무 이르다고 여긴 거죠."

부모가 이 정도 반응만 보여도 괜찮다. 자녀의 사춘기가 평균보다 조금만 일찍 와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부모가 종종 있다. "눈물을 뚝뚝 흘리는 엄마가 있어요. 막연한 불안감 때문이죠. 부모 눈에는 딸이 아직 어려 생리 뒤처리도 못할 텐데 어쩌나 싶은 거지요. 우리 아이는 모든 면에서 '정상'이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을 가진 부모도 있어요. 그래서 사춘기라는 자연스러운 생리적 발달 과정조차 평균에서 벗어났다고 걱정합니다."

부모의 이런 태도는 도리어 아이에게 안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부모가 지나치게 조급하거나 걱정하면 아무렇지 않던 아이조차 자신에게 병이 있는 것처럼 생각할 수 있다. 사춘기가 평균보다 어느 정도 이르거나 늦은 것은 개인의 차이일 뿐이다.

이른 사춘기=작은 키? NO!

그러나 성장에 영향을 받을 정도로 사춘기가 유난히 빠르면 성조숙증 진단을 받게 된다. 성조숙증은 뼈를 비롯, 신체의 전반적인 성장이 매우 빨리 시작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성조숙증 아이는 처음에 또래에 비해 키가 월등히 크지만 다른 아이가 정상적인 성장을 마치면 오히려 키가 그들보다 작아지기도 한다. 성장이 빨리 진행됐다가 빨리 멈출 수 있는 것이다.

여자 아이는 초등학교 1, 2학년 전 유방 발달이 시작하거나 4학년 전 초경을 하면 성조숙증일 가능성이 있다. 남자 아이는 초등학교 3, 4학년 전 겨드랑이에 털이 나거나 변성기가 오면 의사에게 진단을 받을 필요가 있다. 키가 한 달에 1㎝ 이상 계속 자라고 몸무게가 500g~1㎏씩 늘어도 성조숙증을 의심할 수 있다.

성조숙증 기준에는 못미치지만 그래도 남보다 일찍 사춘기를 맞는 아이를 치료해달라고 요구하는 부모도 적지 않다. 이른 사춘기를 약으로 늦춰달라는 것인데, 김 교수는 아들 딸을 키우고 있어 부모 심정은 이해하면서도 의사로선 여간 곤란한 게 아니다.

"제 키가 170㎝ 정도 됩니다. 어떤 어머니는 제가 키가 크니까 키 작은 설움을 모를 거라면서 사춘기를 일찍 시작한 아이지만 키라도 크게 해달라는 거예요. 설득하느라 애 좀 먹었죠. 사춘기가 빠르다고 최종적으로 키가 작다는 법은 없거든요. 사춘기가 이른 자녀 세대가 어른이 됐을 때 부모 세대보다 키가 크다는 게 그 증거죠. 아이의 성장 발달 과정을 모두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단 평소 자녀의 성장 발달을 다른 아이와 비교해볼 필요는 있다. 성조숙증인데도 병원을 너무 늦게 찾으면 별다른 치료법이 없는 상황이 돼버릴 수 있어서다.

"아이가 어렸을 때는 키가 크다고 안심하다가 그게 성조숙증 때문이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을 때는 이미 적절한 치료 시기가 지나간 경우가 많지요. 특히 남자아이는 유방 발달이나 초경처럼 눈에 띄는 신체 변화가 적어 평소 고환 크기 등을 세심하게 관찰하지 않으면 사춘기가 언제 시작됐는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김 교수의 아들과 딸은 지금 고등학생이고 사춘기도 지나왔다. "저는 사춘기가 늦은 편이었는데 제 딸은 빨랐어요. 늦든 빠르든 아이들의 차이를 인정하고 각자의 장점과 자존감을 살려주는 게 부모와 의사의 역할입니다."

●김혜순 교수는

▲1989년 이화여대 의대 졸업

▲1997년 이화여대 의학박사 취득

▲1997년~ 이화여대 의대 소아청소년과 교수

▲2005~2006년 미국 LA캘리포니아대 소아병원 내분비내과 연수

▲2011년~ 한국소아내분비학회 기획이사

▲2000년~ 미국내분비학회 회원, 아시아태평양소아내분비학회 회원

▲전문 분야: 소아내분비내과(사춘기이상질환, 성장, 갑상선질환, 당뇨병)

임소형기자 precar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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