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26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파크(DDP)에서 열리는 2014 가을/겨울 서울패션위크는 한국 패션계의 새로운 도전이 될 행사다. 서울의 랜드마크를 지향하는 DDP의 개관에 발맞춰 개막하는 서울패션위크는 아시아 대표 패션도시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본격적인 시동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실용성보다 독특한 아이디어에 방점을 찍은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비정형 설계로 인해 행사가 매끄럽게 진행될지 걱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그리고 19일 만난 이 부자(父子)에게는 고민이 하나 더 있다. 한국 대표 디자이너 이상봉씨는 국내 정상급 디자이너들이 참가하는 '서울컬렉션' 부문에, 아들 청청(36)씨는 독립브랜드 5년 미만의 신진 디자이너에게 자격이 주어지는 '제너레이션 넥스트' 부문에 각각 참가해 패션쇼를 연다.
'이상봉' 브랜드의 해외컬렉션 팀장이자 지난해 론칭한 여성복 브랜드 '라이'(LIE)를 총괄하고 있는 이청청씨는 이번이 자신의 이름을 내건 서울패션위크 데뷔 무대다. 업무로 마주하는 시간이 많아 아버지는 아들을 "이 팀장"으로, 아들은 아버지를 "선생님"으로 호칭하는 두 사람이지만 서로에게 애정 어린 걱정이 많았다. "아버지 이름에 누가 될까 두렵다"는 아들의 말에 아버지는 "2세 디자이너의 부담감 때문에 차세대 디자이너 특유의 도전 정신이 약해질까 도리어 걱정"이라고 응수했다.
"요즘 쇼 준비로 전에 없이 많이 싸운다"고 아버지가 말문을 먼저 열었다. "첫 단추를 잘 꿰는 게 중요한데 선배 디자이너이기 전에 아버지이다 보니 뭐라 조언하려 해도 응원 아닌 잔소리로 들릴까 조심스러워요. 남성복 디자이너로 런던 패션쇼에 먼저 데뷔했던 이 팀장에게는 여성복으로 데뷔하는 이번 무대에 섬세함이 조금 더 필요할 것 같아요."
묵묵히 듣고 있던 아들이 "아버지 때문에 주목 받아도 실력 없으면 일회성 관심으로 끝나고 만다는 것을 잘 안다"고 말을 보탠다. 그래서 아들은 제너레이션 넥스트 심사 합격 소식을 듣기 전날까지 서울패션위크 지원 사실조차 아버지에게 알리지 않았다고 한다.
세대가 다른 만큼 두 사람은 패션철학도 다르다. 아버지는 크리에이티브를 가장 중시하는 반면 아들은 비즈니스 마인드가 강하다. "미술작가가 전시회를 통해 작가정신을 전하는 동시에 작품세계를 알리고 판매로 이어가듯 패션쇼는 판매로 이어져야 하는 홍보와 마케팅 수단이라고 생각합니다. 창의력이 뛰어나도 브랜드 운영을 제대로 못하면 패션 관계자들과 대중의 관심에서 멀어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이 같은 철학을 바탕으로 아들 이청청씨는 이번 서울패션위크 데뷔 무대에 '내 여자'(My Girl)라는 주제를 붙였다. 도시적이면서 활동적이고 열정이 있지만 변덕도 심한 현대 여성의 정체성을 반영한 의상이다. 다양한 소재의 혼용과 남성과 여성의 모호한 경계가 특징이다.
한글을 디자인 요소로 적극 활용하는 등 한국적 디자인으로 유명한 아버지 이상봉씨에게도 이번 패션위크는 모험의 무대다. 조만간 미국에 플래그십스토어를 열 계획인 그는 현지화를 고려해 미국 옐로스톤에서 영감을 얻어 의상을 디자인했다. 지난달 뉴욕패션위크에서 단독 컬렉션을 열어 호응을 얻었던 바로 그 의상이다. 이씨는 "한국적 디자인의 높은 기대치는 내게 또 다른 중압감이었다"며 "디자인에 오랜만에 미국적인 새로운 에너지를 불어넣어 보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라이와 함께 이상봉 브랜드를 아버지 개인의 부티크가 아닌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 데 관심이 많은 이청청씨는 "이상봉 브랜드는 한글 등 한국적 소재를 활용한 신선한 이미지 외에 외국 감성과 차별화되는 독자적인 디자인적 요소로도 세계 무대에서 인정 받고 있다"며 아버지를 얼른 거든다.
"네가 그렇게 말해도 브랜드 이상봉의 디자인 총괄은 한국 문화를 세계화할 수 있는 다른 후배 디자이너를 영입해 맡길 생각인데?"(아버지)
"브랜드 이상봉의 이해도가 저만큼 높은 후배 디자이너가 또 있다고 생각하세요?"(웃음)(아들)
호칭으로나, 대화 주제 면에서나 가족 관계와 일 사이를 묘하게 오가던 두 사람은 결국 브랜드 국제화 이야기로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김소연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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