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다음주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미일 3국 정상회담을 갖기로 입장을 정했다고 한다. 과거사에 대한 일본의 ‘진정성 있는 조치’를 정상회담의 전제로 제시했던 정부가 이런 결정을 내린 데는 무시할 수 없는 여러 현실적 요인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된다. 그럼에도 정상회담에 이르기까지의 사정을 보면 뒷맛이 개운치 않은 것도 사실이다.
이번 회담을 가장 강력히 요구한 것은 미국이었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고노담화를 수정하지 않겠다”고 한 발 물러선 것도 미국의 압박 때문인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일본이 교과서 검정발표를 다음달 초로 연기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과거사에 대한 진정한 반성이 없는 상태에서 한국과 일본이 미국의 권유에 못 이겨 얼굴을 맞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말이 나올 만하다. 더욱이 일본은 고노담화 계승과 함께 우리가 한일 정상회담의 전제로 제시한 야스쿠니 신사 참배 중단과 위안부 문제를 다룰 고위급 협의체 가동 등의 요구에 아무런 응답이 없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3국 정상의 만남이 이를 한미일 3각 공조의 복원으로 각색하려는 미국의 정치적 목적만 충족시켜 준 채 성과 없이 끝날 가능성을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베 총리가 박근혜 대통령과의 회동을 한일관계 개선의 성과로 포장하면서 과거사에 대한 면죄부로 이용할 수도 있다. 정부가 3국 정상회담의 의제를 동북아 정세와 북핵 문제 등 안보 현안에 국한시키려 하는 것도 이런 고민의 결과일 것이다.
안보와 과거사를 분리해 대응하는 것은 맞다. 그러나 지금 한일관계는 이런 분리대응조차 여의치 않을 정도로 최악이다. 선을 넘어도 한참 넘은 일본의 과거사 도발 때문에 안보에서의 기술적 협력도 여의치 않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이런 점에서 보면 한미일 정상회담에 임하는 정부의 자세는 오히려 적극적이고 공세적일 필요가 있다. 실익이 없다는 이유로 소극적으로 임해서는 정치적 후폭풍만 커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고, 안보뿐 아니라 과거사 문제도 미국 대통령과 함께 있는 자리에서 분명하게 개진해야 한다. 그래야 한미일 정상회담에서 우리가 얻을 것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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