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숲이 무성하고, 야자나무보다 높은 건물이 없는 발리에서 겨울을 보냈다. 서울로 돌아오니 내가 이렇게 삭막한 환경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살아왔던가 싶을 정도로 새롭다. 무엇보다 사람들의 무표정과 바쁜 걸음이 낯설다. 눈이 마주쳐도 웃지 않는 얼굴,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는 급한 발걸음, 몸이 부딪혀도 사과하지 않는 대범한 태도. 그런 불평(?)을 들은 친구는 "발리에서 수십 년 살다 온 것 같다"며 나를 놀렸다.
이곳에서는 너나없이 미래가 보이지 않는 삶을 살아간다. 그 불안과 공포가 사람들의 걸음걸이에도, 낯빛에도, 타인을 대하는 태도에도 드러나는 것 같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공포를 에너지로 굴러가는 사회가 되어버렸다. 다들 사는 일이 막막하니 답이 있을 것 같은 곳을 기웃거린다. 그래서 사방에 '멘토'를 자청하고, '힐링'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이 가득하다. 강연과 토크쇼가 넘쳐난다. 대학생을 위한 취업 준비부터 직장에서 성공하는 법, 연애의 비법과 부부관계까지 내용도 전방위적이다.
발리를 소개하는 관광 안내책자에 적혀있던 글이 생각난다. "발리는 훌륭한 수행자를 만나 마음을 치유하기에 좋은 곳이다. 스승을 찾는 가장 빠른 방법은 일단 '치료사', '영적 수행자', '명상가' 이런 단어로 자기를 칭하는 사람을 무조건 피하는 것이다."
자, 여기 강연으로 밥을 버는 한 사람의 예를 들어보자. 두 시간의 강연 동안 그녀는 젊은이들에게 그들을 둘러싼 시스템 밖으로 나가라고, 인생은 한 번 뿐이니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살라고,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지 말라고,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부추긴다. 강연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20대를 상대로 꿈을 팔아 생계를 꾸려가는 일에 대한 미안함이 밀려든다. 때마침 메일함에 도착한 이달의 카드 대금을 보고 한숨 짓는 그녀. 일 년의 절반 이상을 떠돌아다니느라 늘 끝이 빠르던 연애는 이번에도 고비를 맞고 있다. 마흔을 넘긴 나이에 넘치도록 가진 것은 자유 뿐, 또래의 친구들에게 있는 것이 그녀에게는 없다. 미우나 고우나 의지가 되는 남편도 없고, 끌어안고 잠들 아이도 없고, 매달 꼬박꼬박 들어오는 월급 통장도 없다. 당장 다음 달 수입이 얼마가 될지 알 수 없는 삶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강연이 끊길까 주저하는 비루함이라니…. 누구의 이야기인지 짐작이 가는지.
정말이지 젊은 친구들이 멘토를 찾는 일 같은 건 안 했으면 좋겠다. 끊임없이 멘토를 요구하는 사회는 이미 병 든 사회이고, 그런 곳에서 멘토를 자처하는 이는 가짜이거나 하수일 가능성이 높으니. 게다가 시대는 얼마나 빠르게 변하고 있는가. 그들이 건너온 과거의 어느 시대에 통했던 방식이 지금도 유효할까. 그들이 내놓는 해법은 노력하면 이루어지니 인내하라며 끝없는 자기 계발을 요구하는 수준이기 쉽다. 무조건적인 긍정의 신화를 강요하는 일은 위험하다. 출발선 자체가 달라서 아무리 노력해도 꿈을 이루지 못하는 이도 있으니. 평생 자기 꿈을 찾지 못하고 살기도 하는 게 인생이고, 꿈 없이도 어떻게든 살아지는 것 또한 인생이다. 꿈을 이룬다면 그 대가로 내주어야 하는 게 있기 마련이고, 꿈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얻는 것이 있다. 그러니 삶에는 완벽한 성공도, 완벽한 실패도 없는 것이 아닐까. 나 역시 스스로 선택한 삶이 가져다 준 것들에 감사하고, 잃어버린 것에 대해서는 담담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할 뿐이다. 적어도 내가 원하는 삶을 살아왔다는 자부심만을 밑천 삼아.
청년들이 얼마나 답답하면 우리 세대에게서 길을 찾으려는 걸까 한편으로는 이해도 간다. 하지만 우리 세대가 만든 사회를 보라. 우리는 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냉혹한 경쟁 사회를 만들었다. 일을 멈추는 순간, 삶이 끝장나기 쉬운 시스템이다. 국가는 약자를 보호하지 않으며 사회는 소수자를 이해하지 않는다. 우리에게는 더 이상 답도, 대안도 없다. 부디 우리가 만든 세상에 자신을 맞추려 하지 말기를. 아프고 어려워도 그저 제 몸으로 부딪히며 저마다의 길을 여는 수밖에 없다. 인간은 누구나 마지막 순간까지 실수하고 흔들리다 가는 존재일 뿐임을 기억하면서.
김남희 여행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