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방과의 관계 강화를 주장하는 반정부 시위가 시작된 지 넉 달 만에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으로 치달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법적 정당성을 주장하는 치열한 논쟁이 굽이치고 있다.
러시아로 야반도주한 다음날 의회로부터 탄핵 당한 빅토르 야누코비치 대통령은 야권이 정국 안정 방안에 합의한 지 하루 만에 약속을 깨고 권력을 찬탈했다고 맹비난했다. 러시아도 우크라이나의 권력 교체가 자국과 유럽의 중재로 이뤄진 국제적 합의를 파기한 쿠데타라고 공격했다. 우크라이나 야권은 이에 야누코비치의 직무유기와 시위대 학살 명령은 탄핵 사유로 충분하다고 맞받았고, 미국과 유럽도 야권이 구성한 과도정부의 정통성을 지지했다.
러시아가 공세를 취하던 논쟁 구도는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에서 금세 뒤바뀌었다. 사병을 동원해 자치정부와 의회를 장악한 세르게이 악쇼노프 총리는 주민투표를 통해 '독립 후 러시아 귀속' 방침을 관철했다. 주민투표가 '영토 및 주권 관련 사항은 국민투표로 결정한다'는 우크라이나 헌법에 대한 위반이라는 비난에 그는 "쿠데타로 헌정체제가 무너졌다"는 논리로 응수했다. 여기에 러시아는 국제법의 강행규범(최우선 원칙) 중 하나인 '인민의 자기결정권'을 들며 크림을 엄호했다.
크림반도가 민무늬 군복에 러시아제 무기를 든 수만 명의 무장세력에 장악되면서 국제법 논쟁은 더욱 심화했다. 일사불란하게 군 기지를 봉쇄하고 공항을 점거하고 친정부시위를 탄압하는 이들의 정체를 두고 크림 주둔 러시아 흑해함대가 본국에서 실어온 병력이라는 관측이 힘을 얻자 우크라이나와 서방은 러시아의 무력침공으로 상황을 규정하면서 유엔헌장에 명시된 국가의 영토보전 권리(이 또한 국제법 강행규범이다)을 인용했다. '세계헌법'의 권위를 빌린 비난은 그러나 소속을 감춘 군인들 앞에서 맥을 못추고 있다.
우크라이나 사태를 둘러싼 뜨거운 법적 논쟁은 역으로 유엔을 중심으로 한 국제법 체제의 무력함을 여실히 드러낸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크림공화국과 합병조약을 체결하는 자리에서 "서방은 2008년 코소보 독립을 지지했었다"고 득의양양 비꼰 것은 문제 해결은커녕 일관된 규범도 제시하지 못하는 국제법을 조롱한 것에 다름 아니다.(물론 푸틴은 러시아가 코소보 독립을 극력 반대했던 점은 언급하지 않았다) 아르세니 야뉴체크 우크라이나 총리가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회의에서 러시아 대사에게 "전쟁하자는 것이냐"고 쏘아붙이며 유엔헌장 책자를 흔들었을 때 그는 한 국가의 영토보전권을 밝힌 제2조 4항을 강조하려 했겠지만 헌장엔 크림인들이 주장하는'인민들의 자결의 원칙'(제1장 2조)도 담겨있다.
유엔헌장 및 유엔 우호관계 선언, 이로 규율되는 국가 간 조약으로 구성되는 현행 국제법 체제는 2차대전 직후 그 근간이 형성된 '역사적 산물'이다. 세계대전의 참상을 반성하며 항구적 평화를 유지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구를 식민주의 청산, 동서 간 냉전이라는 당시 현안과 조화시키려 한 것이다. 그런 만큼 시대 흐름에 발맞추는 부단한 갱신이 없다면 국제법은 변화하는 세계와 버석댈 수밖에 없다. 식민지 해방 과정에서 강조됐던 자결권이 국민국가의 틀이 공고해진 오늘날 영토보전권과 충돌하는 것처럼 말이다.
법학자들은 유엔 산하 국제사법재판소(ICJ)가 코소보 독립 당시 두 강행규범의 갈등을 해소할 기회를 흘려버렸다고 지적한다. 코소보 독립의 합법성을 가려달라는 요청을 받았던 ICJ는 판단 대상을 '독립'이 아닌 '독립선언'으로 굳이 한정하고는 "독립선언을 금하는 국제법 규칙이 없으므로 합법하다"는 허전한 의견을 내놨다. '세계법원'의 책임 회피는 우크라이나를 신냉전의 무대로 만드는데 일조했고, 국제법의 존립 기반은 세계 평화와 함께 흔들리고 있다.
이훈성 국제부 기자 hs0213@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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