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 50㎝가 되지 않을 것이다. 쪼그리고 앉은 여인이 팔을 뻗어 대지의 거죽을 가랑이 사이로 긁어 모으는 한 피치의 거리. 호미를 쓰는 노동의 풍경은 눈물겹게 소박하다. 휘어진 목에 달린 부등변 삼각형의 날은 오로지 한 방향 운동에서만 쓸모가 생긴다. 그건 아마도 한반도 철기문명에서 파생된 가장 순일한 형태의 단방향성일 것이다. 베고 자르고 쪼개는 것이 아니라 오직, 끌어당김.
그런데 끌어당길 때, 당기는 주체는 사람만이 아니라 어쩌면 땅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할머니 한 분이 하지감자를 심고 계시던 영광 효동마을에서 했다. 엉덩이에 실린 체중과 호미 끝에 걸린 흙의 무게가 팔의 수축력에 의해 가까워지며 상쇄되는 순간 그 인력은 사라졌다. 그랬다가 할머니가 팔을 뻗어 날을 땅에 꽂는 순간 그것은 되살아나는 것이었는데, 서로를 당겼다 놓기를 반복하는 땅과 사람 사이에 작은 호미 하나가 시소 받침처럼 괴어져 있었다.
호미는 머리에 수건을 두른 할머니, 고무줄 몸뻬를 입은 아주머니가 쥐고 있어야 호미답다. 대지에 바투 엎디어 가장 낮게, 가장 여리게, 그리고 가장 끈덕지게 살아가는 인생의 경계를 연출하는 오브제. 그래서 마초적 본능을 숨기지 못하는 수컷은 결코 호미질을 할 수가 없다. 그러나 단언컨대, 이 나라 백성의 입에 들어간 것 중 절반 이상은 그 호미질로 일구어냈을 것이다. 팍-팍-. 작은 채마밭에서 호미 한 자루의 움직임이 땅과 여성성, 그 위대한 결합의 풍경화를 그려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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