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병합을 확정한 러시아의 다음 행보는 뭘까. 냉전이 끝나고 사반세기만에 동서는 다시 얼어붙을까.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은 18일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지도자들과 합병조약에 서명하기 직전 모스크바 상ㆍ하원 합동 연설에서 우크라이나의 분열을 원치 않는다고 말했다. 친러시아 지역이며 러시아 편입을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가 계속되고 있는 동부 우크라이나에는 개입하지 않겠다는 의사를 내비친 것이다. 푸틴은 또 우크라이나와는 형제국인 만큼 크림 사태 탓에 관계를 훼손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푸틴은 우크라이나에 구소련 시절 러시아 영토가 즉흥적으로 이전되는 등 러시아의 이해관계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현 우크라이나 중앙정부를 신 나치라 지칭하며 "그들은 권력을 잡고자 테러와 살인 학살을 서슴지 않았다"는 비난도 퍼부었다.
주요 외신들은 푸틴에게는 "크림이 아니라 우크라이나 자체가 메인 요리"라며 "푸틴이 우크라이나 전체에 러시아의 영향력을 미치기를 원하는 것은 분명하고 크림 합병으로 이번 위기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고 보고 있다.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에 광범위한 자치권이 부여돼 분열되길 바라는 것이 푸틴의 속마음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러시아 외교부는 크림과 합병조약을 조인하기 전날 우크라이나의 중립화와 연방제 개헌, 러시아어의 제2공용어로의 지위 격상 등을 포함하는 협상안을 서방에 제시했다. 특히 우크라이나 중립화는 러시아와 유럽연합 미국이 보장하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로 이를 확인하는 방안을 내놨다. 제안은 우크라이나 동부에서 러시아 우위를 인정하라는 뜻을 담은 것으로 서구나 우크라이나 정부가 받아들이긴 어려운 내용이다.
전문가들은 사실상 우크라이나를 친서방의 서부와 친러의 동부로 양분하겠다는 뜻이라고 분석한다. 홍석우 한국외국어대 러시아연구소장은 "우크라이나 사태의 핵심은 새롭게 형성되는 유럽의 지정학 구조 속에서 유럽연합(EU)과 러시아 중 누가 캐스팅보트인 우크라이나를 손에 쥐느냐 하는 패권싸움"이라며 "향후 푸틴은 크림반도를 발판으로 우크라이나 동부지역으로 자신의 세력을 넓힐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내다봤다.
향후 국제정세와 관련해 뉴욕타임스는 "크림을 낚아채간 푸틴의 결정으로 냉전 이후 25년간 유지됐던 국제질서가 무너졌다"며 "신냉전까지는 아니라도 미러가 오랜 대결 국면을 맞을 것"으로 봤다. "암흑의 시기가 냉전만큼 오래 가지 않기만을 바랄 뿐"(마이클 맥폴 미 국가안전보장회의 러시아 담당보좌관) "장기적인 동서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냉전작가 마이클 돕스) 같은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이 신문은 전했다.
러시아 외교국방정책위원회 표도르 루캬노프 회장은 서방의 제재가 푸틴을 막을 수 없을 것이라며 "만약 그들이 (경제적)전쟁을 원한다면 그렇게 하라는 게 현재 러시아의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러시아도 미국, EU와 타협을 기대하고 있다"며 "유일한 해법은 우크라이나가 러시아쪽으로 돌아서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이 신문은 덧붙였다.
이성원기자 sung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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