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고용부의 임금체계 개편 매뉴얼은 근속에 따라 임금이 자동적으로 오르는 연공제를 완화하고 업무와 기능에 따른 직무ㆍ직능제 위주로 개편하는 것이 핵심이다. 고령자가 생산성보다 임금을 더 많이 받는 것을 막아 기업이 정년 연장과 통상임금 확대 등으로 인한 인건비 부담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목적이 깔려있다.
박화진 고용부 노사협력정책관은 "(연공제로) 기업들이 중장년 인력고용에 부담을 느껴 희망퇴직 형태로 조기퇴직을 실시하고, 정규직 인력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하는 등 일자리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단기적으로 임금피크제를 실시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임금체계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장기근속자에 고임금 막도록
고용부는 직종별 임금체계 모델을 통해 임금개편 방향을 제시했다. 현재 기본급이 낮고 시간외 수당이 많은 자동차 제조업 생산직은 기본급을 현재 57% 수준에서 90%로 끌어올리되 호봉이 아닌 업무 숙련도에 따라 받는 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생산성이 저하되는 40대 중반 이후에는 숙련급 대신 직무급을 도입한다. 입사 이후 임금이 가파르게 오르다 40대에 상승률이 꺾이는 구조다.
은행 사무직은 현재 연공급 체계와 고임금이 명예퇴직을 부추긴다는 지적에 따라 역할 중심의 숙련급을 도입하는 안을 제시했다. 40대 중반부터는 임금 체계를 이원화해 금융상품개발 등 전문직에 직무급, 은행장 등 임원에는 역할급으로 바뀐다. 이 때부터는 직책에 따라 임금 상승폭이 달라지는 셈이다.
병원 간호사는 병원 간 이동이 활발해 업적급 성격이 강하지만, 근속 연수가 평균 5.7년으로 짧아 인력이 부족한 상태다. 때문에 초반 숙련제에서 중장년 이후 직무급으로 전환해 임금을 계단식으로 상승시켜 장기근속을 유도한다는 안이다.
직종이나 사업장에 따라 구체적 임금체계는 천차만별이 되겠지만 정부가 제시하는 방향은 뚜렷하다. 장기근속자에게 너무 많은 임금이 집중되지 않도록 근속이 아닌 숙련도 등을 기본급 기준으로 삼고, 성과에 따라 변동되는 성과급을 늘리라는 것이다. 정부가 제시한 모델에서 성과급 비중은 총 임금의 10~30%로 현재 수준(8.7%)보다 많고 사무직일수록 비중이 크다.
문제는 단절된 노사정 대화
노사가 합의해야 할 임금체계 개편에 대해 정부가 선도적으로 안을 들고 나온 것은 이례적이다. 지난해 대법원 판결에 따라 통상임금이 확대되고 60세 정년연장을 보장하는 법이 통과돼 임금체계 개편이 시급한데도 이를 논의할 기구는커녕 노사정 간 대화가 단절돼 있는 탓에 정부 혼자 나선 것이다. 지난해 노사정위원회는 임금체계 개편 논의를 위한 위원회를 구성하겠다고 했으나 경찰의 민주노총 사무실 강제진입으로 한국노총이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 논의는 진전되지 않고 있다. 국회 환경노동위 산하 노사정소위원회가 4월 15일까지 일시적으로 운영되고 있기는 하지만 통상임금과 근로시간 단축만 논의 대상일 뿐 임금체계 개편은 빠져 있다.
이런 이유로 노동계는 물론 학계도 문제를 지적한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원은 "임금체계 개편 자체는 필요하나 노사가 모여 논의해 모델을 개발하고 선택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정부가 일방적인 임금 개편안을 내면 오히려 노동계의 반발만 불러일으킬 수 있다"고 우려했다.
민주노총은 성명에서 "사안의 중요성으로 볼 때 노사정의 균형 있는 협의와 합의를 거쳐야 하는 것이 기본이다. 그럼에도 고용부는 사용자들의 이해와 요구는 성실히 경청하고 반영한 반면, 노동자들의 입장은 철저히 배제해 왔다"고 비판했다. 노동계는 정부의 개편안이 결국 임금수준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라고 우려하고 있다.
이윤주기자 miss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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