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절반 진척 3개월 만에 1조5400억 확보금융 계열사는 감감 무소식해운 불황에 현대상선이 복병
한진, 비교적 순항 에쓰오일 지분·구형 항공기매각 작업 큰 차질은 없어해운 자회사 편입엔 경보음
동부, 뒤처진 걸음 핵심 매물 금속반도체 처분아직까지 구체적 성과 없어채권단 자금 지원 중단경고
동양그룹 사태의 충격이 가시지 않았던 지난해 11~12월, 시장엔 '블랙리스트'가 돌기 시작했다. 이른바 재무구조 위험기업들. 동부그룹, 한진그룹, 현대그룹이 구체적으로 거론됐다. 당국은 빚이 많은 이 기업들에 대해 고강도 자구계획을 요구했고, 해당기업들은 알짜 계열사와 핵심자산을 팔겠다는 방안을 내놓았다. 매각자산 규모가 3조원에 달해, 시장에선 '통 큰 구조조정'이라는 긍정적 반응이 나왔다. 하지만 3개월여가 지난 지금까지 뚜렷한 성과는 나오지 않고 있다. 해당업체는 "안 파는 게 아니라 안 팔리는 것"이라며 해명하고 있지만, 당국과 시장의 반응은 점점 더 싸늘해지고 있다.
현대그룹
알짜 자산 매각을 통해 총 3조3,000억원을 조달하겠다고 밝혔던 현대그룹은 현재 자구계획안의 절반가량이 진척된 상황. 특히 지난달 12일 액화천연가스(LNG) 운송부문 매각 우선협상대상자로 IMM인베스트먼트를 선정했는데, 약 1조1,000억원짜리로 상반기 중 최종계약을 앞두고 있다.
최근 2대 주주인 쉰들러사와 경영권 갈등을 빚고 있는 현대엘리베이터 역시 우여곡절 끝에 유상증자에 성공, 1,803억원을 확보했다. 더불어 지난해 말 컨테이너박스 1만8,097대를 563억원에, KB금융지주 지분 113만주를 465억원에 팔았고, 지난달엔 현대오일뱅크 지분을 장외에서 모두 매각해 140억원을 거둬들였다. 이로써 자구안 발표 3개월만에 총 1조5,401억원을 확보하게 됐다.
하지만 총 1조원에 달하는 대형 매각물건인 금융계열사(현대증권 현대자산운용 현대저축은행)들은 아직까지 감감 무소식이다. 업계 관계자는 "현대증권이 변수다. 좋은 매물이긴 하지만 증시가 부진한 상태에서 우리투자증권 대우증권 동양증권 등 증권사 매물들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바람에 원매자를 찾기도, 제값을 받기도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현대그룹 정상화의 가장 큰 복병은 역시 현대상선이다. 아무리 자산매각도 중요하지만 결국은 해운업이 살아나서 현대상선의 경영 자체가 호전되어야 하는데, 아직까지 갈 길은 멀어 보인다. 그러다 보니 시장의 시선도 점점 차가워져 한국신용평가는 지난 17일 현대상선을 포함한 현대로지스틱스, 현대엘리베이터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투기등급인 BB+로 낮췄다. 로지스틱스→엘리베이터→상선→로지스틱스로 이어지는 순환 출자 구조 상, 상선의 부진이 나머지 두 기업의 신용도에 부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이다.
회사 관계자는 "다른 기업에 비해 비교적 속도를 내고 있는 만큼 향후 과정도 순조롭게 진행될 것으로 본다"며 "아직 구조조정 과정인 만큼 시간이 지나면 신용도 역시 회복될 것"이라고 말했다.
한진그룹
지난해 12월 대한항공이 발표한 3조4,900억원대 재무구조 개선안에서 가장 덩치가 컸던 건 에쓰오일 지분(28.41%, 2조2,000억원 상당) 매각. 이미 에쓰오일 최대주주인 사우디아라비아의 아람코가 '전량 매입 방침'을 밝힌 터라, 늦어도 상반기 중에는 매각작업이 완료될 것으로 보인다.
구형 항공기 매각작업도 순조로운 편. 지난 1월 화물기(B747-400) 1대의 매각을 완료했고, 다음달에도 같은 기종 1대를 팔기로 확정했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2015년까지 13대 매각을 통해 2,500억원을 확보하겠다는 목표 달성에 큰 차질은 없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한진해운 리스크'다. 한진해운은 그 동안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의 제수인 최은영 회장이 독자경영을 해왔는데, 해운시황악화로 인한 재무구조압박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백기'를 든 상태다. 때문에 한진해운은 다시 한진그룹 품으로 들어가게 됐는데, 이를 두고 시장에서는 "대한항공까지 동반 부실에 빠지는 상황이 도래할 수 있다"는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
실제로 지난 13일 한국기업평가는 한진해운의 회사채 신용등급을 'BBB+'에서 'BBB-'로 떨어뜨렸다. 작년 12월 발표한 2조원대의 자구계획 가운데 벌크 전용선 사업부분 매각으로 3,000억원을 확보한 것 말고는 아직까지 큰 성과를 내지 못한 탓이다. 2011년 389.7%였던 한진해운의 부채비율은 지난해 1,444.7%까지 급등해 있다. 한진해운이 '턴어라운드'(실적 개선)에 성공하느냐가 결국 한진그룹 전체의 미래에 큰 관건인데, 시장의 전망은 이마저도 싸늘하다.
홍진주 신한금융투자 리서치센터 연구원은 "대饑陋?등 주력 계열사들이 아무리 이익창출을 많이 한다 해도 한진해운의 부실을 메우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동부그룹
지난해 11월 가장 먼저 자구안을 밝혔던 동부그룹은 핵심영역인 금속(동부메탈)과 반도체(동부하이텍)까지 처분키로 한 상태. 하지만 아직까지 구체적 성과는 없다.
첫 매각성사는 이달 말쯤 나올 전망이다. 사모펀드인 KTB 프라이빗에쿼티(PE)에 약 6,700억원 수준(부채 포함)의 동부익스프레스를 매각하는 계약이 이달 말 체결될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하이텍과 메탈 등 핵심 매물. 동부 측은 "조만간 좋은 소식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하이텍의 경우 현재 국내외 5~6개 업체들이 인수의사를 보였고 주채권은행인 산업은행은 후보군을 대상으로 이달 중 매각안내서를 발송하기로 했다. 기업실사 역시 이미 마친 상태로, 후보기업들 가운데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해 빠르면 상반기 최종 계약을 한다는 목표다.
유동성 위기의 한 축이었던 동부제철의 인천공장 매각은 5월쯤 단행한다는 목표다. 이와 관련, 최근 산은이 인천공장과 동부발전당진 지분을 패키지로 묶어 포스코에 인수해 달라는 요청을 했지만, 포스코는 난색을 표시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마땅한 주인 찾기가 쉽지 않을 수도 있다는 방증이다.
이밖에 기업공개(IPO)를 통해 증자에 나서기로 한 동부 특수강의 경우, IPO와는 별개로 산은이 지분 인수를 검토하고 있고, 김준기회장의 1,000억원대 사재 출연은 채권단과 유상증자 등 적절한 방법 및 시기를 두고 협의 중이다. 동부메탈은 시장에서 저평가된 부분이 있다고 판단 시기를 조절한다는 방침이다.
사실 성과 면에서는 동부그룹의 점수가 가장 뒤처진 상황. 금융감독원 역시 최근 자산 매각이 더 지연될 경우, 채권단의 자금지원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경고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회사 관계자는 "매각 예정인 자산에 대해 인수희망자가 속속 나타나고 있다"며 "곧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으로 본다"라고 밝혔다.
김정우기자 wookim@hk.co.kr
김현수기자 ddacku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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