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최대화두는 규제완화. 박 대통령 스스로 규제를 '암 덩어리'로 규정했을 만큼, 규제혁파에 대한 강공드라이브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역대 어느 정부치고 규제완화를 외치지 않은 적이 없었고, 대부분 일회성 이벤트에 끝났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 보니 박근혜 정부의 규제완화정책 성과를 보는 경제계의 시선 역시 '반신반의'상태다. 이에 본보는 국내 대표 규제정책전문가 3인으로부터 규제완화정책의 성공과 지속가능성을 위한 조건과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사고만 나면 규제 만들어… 흥분하면 졸속 불가피"김도훈 산업연구원장(한국규제학회장)
"우리나라는 사고가 하나 터지면 반드시 그에 대한 규제를 만들려고 해요. 정치권이든 시민사회든 다 흥분하는 거죠. 하지만 흥분해서 만든 규제는 결국 졸속규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김 회장은 규제의 제1 원칙으로 '흥분하지 않는 냉정함'을 강조했다. 대형 사건사고가 발생한 후 대책 차원에서 법을 개정하거나 새로운 규정을 만들게 되면, 차분한 검토과정이 생략돼 결국 졸속ㆍ과잉규제로 이어진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그는 흥분이 낳은 졸속규제의 대표사례로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꼽았다. 그는 "화평법과 화관법은 지난해 잇따라 발생한 화학물질 누출 사고로 인해 생겨난 법률"이라며 "취지는 이해하지만 과연 입법과정에서 안전교육 강화 등 대안 마련이나 실제 사고발생 확률 등에 대해 얼마나 충분히 논의해봤는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물론 모든 규제에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현재 우리사회는 환경, 노동, 금융 등 다양한 분야에서 규제를 강조하는 시대로 가고 있고 이 같은 시대의 흐름까지 부정할 수는 없다"며 "다만 규제를 만들어가는 과정을 차분히 들여다볼 수 있는 시스템을 국가차원에서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같은 규제개혁시스템이 자리잡는다면, 반드시 정부주도의 규제 없이도 민간 자율적으로 문제들을 해결해나가는 분위기가 조성될 것이고 결국 자연스럽게 불필요한 규제도 줄어들 것이라는 의견이다.
그는 특히 규제를 풀어야 할 분야로 ▦의료 ▦교육 ▦관광 ▦금융 등 서비스 쪽을 꼽았다. 그는 "선진국들이 점차 의료규제나 교육규제 등을 완화해나가는 상황에서 우리나라만 각종 규제에 얽매여 있게 된다면 국가 경쟁력은 도태되기 마련"이라며 "현재 같은 규제를 유지한 채로 경제성장까지 해내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밝혔다.
"부작용 100% 없애겠다는 이상론이 과잉 규제 낳아"최병선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전 규제학회장)
"어떤 분야든 부작용은 생길 수 밖에 없어요. 이걸 인정해야 하는데 마치 모든 부작용을 원천적으로 제거하겠다는 목표로 규제를 만드니까 규제의 종류만 많아지고 강도도 세지는 겁니다."
최 교수는 현실과 동떨어진 이상주의적인 사고가 불필요한 규제를 낳는다고 잘라 말했다. 그는 "100번 중에 3~4번은 사고가 날 수 있는데 우리사회는 이 같은 사고가 터지면 '사고 제로'를 목표로 규제를 만든다. 이런 이상주의가 사회 곳곳에 깔려 있기 때문에 전 분야에서 과도한 규제가 계속 늘어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일순간에 1만개가 넘는 규제를 모두 철폐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 그런 만큼 최 교수는 규제완화의 원칙으로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부작용을 100% 없애겠다는 이상론적 생각을 버리고 '80%, 70% 만 억제해도 괜찮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현실적인 목표를 설정하고, 그에 맞게끔 규제의 종류를 줄이고 강도를 서서히 낮춰가는 것이 바람직한 규제완화의 시발점"이라고 밝혔다.
그는 과정이 어떻든 규제는 완화되어야 하며, 그래야 국제경쟁력이 높아진다고 봤다. 우리나라에서 국제경쟁력이 떨어지는 분야에는 반드시 과도한 규제가 자리잡고 있는데, 금융 의료 등이 대표적 경우라고 지적했다.
그는 성공적인 규제완화의 대표적 사례로 술(주류)산업을 꼽았다. 술은 수년 전까지만 해도 면허, 제조시설, 원료종류, 배합비율, 도수 등 시시콜콜한 것까지 규제가 가해졌다. 최 교수는 "소주와 맥주 등에 대한 제조시설기준이 완화되고 전통주 제조장의 직매장 시설기준 등이 폐지되자 다양한 주류 상품이 나오기 시작했고 소비자 선택권도 넓어졌다. 규제를 완화하니까 주류산업 전반의 경쟁력이 높아지게 된 것"이라며 다른 산업도 이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개혁 이후 청사진 보여주며 시민사회와 보조 맞춰야"김태윤 한양대 행정학과 교수
"'대못 뽑기' 식의 일회성 규제완화로는 규제개혁이 완성되지 않습니다. 이슈를 하나하나 검토해 규제를 완화하는 '원 포인트 규제개혁'이 상시적으로 이뤄져야 합니다."
김 교수는 '상시 규제개혁 시스템'을 강조했다. 그는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의 예를 勇?"한꺼번에 모든 규제를 다 스크린해서 전면적으로 개혁하려고 하기보다 LG디스플레이 파주공장처럼 이슈가 되고 있는 규제를 하나씩 풀어가며 꾸준히 추진해나가는 것이야말로 앞으로의 규제개혁 모델이 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역대 정부의 규제개혁 중에선 김대중정부 시절 규제개혁 시스템이 가장 좋았다고 평가했다. "당시 정부는 규제의 50%를 철폐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꾸준히 규제개혁을 추진했다"며 "그 결과 정권 내내 상당한 수의 규제가 줄어드는 등 효과를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반면 노무현ㆍ이명박 정부 시절의 규제개혁 실패는 결국 이런 꾸준함이 결여됐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두 정권 모두 집권 초기에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결국 집권 말기가 되니까 더 많은 규제가 생기는 등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며 "예컨대 '대못 뽑기' '규제전봇대 뽑기'라는 말에서 알 수 있듯이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할 규제완화를 일회성 이벤트처럼 추진한 것이 가장 큰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그는 상시적인 원 포인트 규제개혁을 위해선 공무원들의 의식과 자세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시민사회를 설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규제개혁이 어려운 이유는 다수의 시민들이 그로 인해 피해를 입을 수 있다는 생각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며 "시민 사회에 대해 규제개혁 이후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발생 가능한 문제는 사회적 협약을 통해 보완책을 미리 마련하는 등 시민사회와 보조를 맞춰나가는 시스템이 갖춰져야 상시적인 규제개혁이 가능하다"고 밝혔다.
박주희기자 jxp938@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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