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의 러시아 귀속 문제로 딜레마에 빠졌다. 러시아로의 귀속을 압도적으로 찬성한 크림자치공화국 주민투표 결과를 인정하고 러시아의 편을 들 수도, 이를 인정할 수 없다는 우크라이나와 미국 영국 프랑스 등 서방의 입장에 설 수도 없기 때문이다.
중국의 속내는 전통적 우방인 러시아를 지지하는 쪽에 가까워 보인다. 중국은 최근 각별한 정성을 쏟으며 러시아와 친밀하게 지내왔다. 시진핑(習近平) 주석이 지난해 3월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찾아가 만난 정상이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었다. 지난달에도 서방국가 정상들이 대부분 불참한 소치 동계올림픽 개막식에 참석, 푸틴 대통령과 정상 회담을 가졌다. 2년 연속 첫 해외 순방국으로 러시아를 택한 것이다.
긴 국경을 맞댄 이웃 나라인데다가 자원 강국인 러시아는 중국이 앞으로 성장하는 데 있어 반드시 협조를 받아야 할 국가다. 특히 미국의 아시아 복귀와 중국 포위 전략 등에 대항하기 위해서도 러시아는 꼭 필요한 존재다.
그러나 본심이 러시아에 기울어 있다 하더라도 이를 대놓고 공식화할 순 없다. 중국으로서는 세계 초강대국인 미국과 가능한 한 부딪치지 않고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가는 게 여전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더구나 중국은 스스로 미국에 서로 대립하지 않는 '신형대국관계'를 요구해 놓은 상황이다. 러시아가 크림반도에서 물러나지 않을 경우 강력한 제재를 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미국의 면전에 '중국은 러시아 편'이라고 얘기하는 순간 미중 관계는 전체적으로 어그러질 수 밖에 없다.
더구나 한족과 55개 소수민족의 다민족 국가인 중국의 내부 논리로 봐도 우크라이나의 품을 벗어나겠다는 크림자치공화국의 행동에 마냥 박수를 쳐 줄 수는 없다. 크림공화국 사태는 그렇지 않아도 화약고로 불리는 중국 신장(新疆)위구르자치구나 시짱(西藏)티베트자치구를 자극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신장위구르자치구와 시짱티베트자치구가 크림자치공화국처럼 주민 투표로 중국에서 독립하겠다고 나설 경우 사태는 겉잡을 수 없이 커진다. 물론 중국 중앙정부로선 이를 결코 용납할 수 없다. 이 두 곳은 군사ㆍ전략적 측면뿐 아니라 자원 및 에너지로 볼 때도 포기할 수 없는 지역이다.
이런 고민 때문에 중국은 지난 15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전체회의(15개국) 표결에서 '크림자치공화국 주민투표 무효' 결의안에 기권표를 던졌다. 이날 표결에서는 러시아가 반대를, 한국을 포함해 나머지 미국과 유럽 주요국은 모두 찬성표를 던졌다. 중국 외교부는 "결의안 통과는 각 국가의 대립을 격화시키면서 국면만 더 복잡하게 만들 것"이라며 "이는 우크라이나와 국제사회의 공통 이익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어 "정치적 해결을 추진하는 게 급선무"라며 원칙론만 되뇌었다.
이와 관련 베이징(北京)의 한 외교 소식통은 "우크라이나 사태에 대한 중국의 솔직한 입장을 듣기 위해 여러 차례 접촉을 시도했으나 만나는 것 자체를 꺼리는 실정"이라며 "다만 중국이 최근 러시아를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순(脣)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는 점이 눈에 띈다"고 귀띔했다. 러시아의 불안이 곧 바로 중국에 끼칠 영향을 우려하고 있다는 얘기다.
중국이 선언한 '책임 대국 외교'가 시험대에 올랐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커창(李克强) 총리는 지난 5일 정부업무보고에서 "중국은 책임지는 대국"이라며 "국제 문제에 적극 동참해 건설적 역할을 하면서 국제적 공평과 정의를 수호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경제 대국 중국이 우크라이나 사태로 과연 외교에서도 '책임 대국' 역할을 해낼 수 있을지 묻는 시험대에 섰다.
베이징=박일근특파원 ikpark@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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