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오후 서울 지하철 분당선 강남구청역에서 폭발물로 의심되는 가방이 발견돼 이 일대가 2시간 넘게 전시상황 같은 혼란에 휩싸였다. 정작 가방 안에는 옷걸이와 옷가지뿐이었지만 내용물이 확인되기도 전 “폭발물이 맞다”는 보도가 쏟아지며 시민들은 난데 없는 테러 공포를 경험해야 했다.
경찰에 따르면 강남구청역에서 폭발물 의심 신고가 들어온 것은 이날 오후 2시 4분. 한 승객이 분당선 왕십리방향 승강장 의자 옆에 놓여 있는 회색 여행용 가방을 발견해 역무실에 알렸다. 역 관계자는 “안에 뭐가 있을지 모르니 확인할 수 있는 장비를 갖고 출동해 달라”고 경찰에 신고했다.
신고를 접수한 서울 강남경찰서가 서울경찰청과 군부대 등에 상황을 전파해 약 50분 뒤 경찰특공대 폭발물 처리반(EOD)과 폭발물 탐지견 두 마리가 투입됐다.
탐지견을 이용한 수색에서는 폭발물로 의심할 만한 정황이 발견되지 않았지만 휴대용 X선 투시기로 가방 내부를 촬영한 뒤 상황이 반전됐다. 영화 속 폭발물 회로처럼 굵은 선들이 갈고리 모양 등으로 얽혀 있는 형태가 투시기 모니터에 나타난 것이다.
경찰과 군, 국가정보원 관계자들은 긴급회의를 열어 전자식 센서와 한 개의 뇌관으로 구성된 폭발물로 판단, 오후 3시 35분 해체를 위한 물사출분쇄기(일명 물포) 준비에 들어갔다.
강남구청역에는 비상이 걸려 지하 1~3층에 있던 역무원과 상점 주인 등이 일제히 지상으로 대피했다. 분당선 지하철 22편을 오후 2시 20분부터 무정차 통과시키던 코레일은 3시 40분부터는 1시간여 동안 열차 운행을 전면 중단했다. 같은 역을 운행하는 서울 지하철 7호선도 무정차 통과해 시민들이 불편을 겪었다.
하지만 폭발물은 발견되지 않았다. 폭발물 처리반이 가방에 방폭 텐트를 씌운 뒤 로봇을 접근시켜 물포를 발사해 가방을 열자 철제 옷걸이와 남녀 옷 10여 벌이 쏟아져 나왔다. 물줄기가 플라스틱 가방에 부딪히며 가벼운 소음이 발생했을 뿐이다.
오인신고로 끝날 해프닝이었지만 역사 밖에서는 “폭발물로 확인됐다” “1차 뇌관 해체 중 미세한 폭발음이 발생했다” 등 확인되지 않은 보도가 잇따르며 테러 공포가 확산됐다. 고교생 김지윤(18ㆍ서울 서초동)군은 “역 근처 치과에서 진료 받고 집으로 가는 길인데 정말 폭발물이 나온 건지 몰라 불안했다”고 말했다. 역내에서 가게를 운영하는 문인호(66ㆍ여)씨는 “예사롭지 않은 일이 벌어지는 듯해서 조마조마했다”며 놀란 가슴을 쓸어 내렸다.
혼란을 가중시킨 언론보도는 경찰을 통해 나온 것으로 알려졌지만 강남경찰서 관계자는 “폭발물이 의심돼 정상 절차에 따라 조치했고 외부에 폭발물이라고 확인해 주지 않았다”고 밝혔다.
정지용기자 cdragon25@hk.co.kr
김창훈기자 chkim@hk.co.kr
손현성기자 hsh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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