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11일은 일본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난지 3주년 되는 날이다. 아내가 함께하고 있는 작은 환경단체인 '핵 없는 세상'이 후쿠시마를 기억하자는 서울광장 행사에 참여하기로 했단다. 그러하니 사회 다큐멘터리를 찍는 사진가 남편도 뭔가 함께 해야 하지 않겠냐며 압력을 넣는다. 그래서 공짜로 기념사진 찍어주는 '사진관'을 차려주마하고는 삼각대와 중형 핫셀블러드 카메라를 들고 광장으로 나갔다.
환경단체들의 집회는 어린 아이들까지 식구들이 모여 함께하는 묘한 공간이다. 직접 만들어 온 각양각색의 손피켓을 들고 카메라 앞에 선 가족들을 사진에 담는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피켓에 쓰인 구호 속에는 여전히 '원자력'과 '핵 에너지'가 섞여있다. 흔히 쓰지만 원자력은 옳은 명칭이 아니다. 원자력은 핵무기에서 나타나는 폭력과 죽음을 은폐하기 위해 일부 집단이 만들어 사용하는 기만적인 단어일 뿐이다. 엄밀하게 원자의 핵을 분열시켜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것이므로 핵력 또는 핵 에너지라 해야 옳다.
1939년 여성 물리학자 리제 마이트너는 우라늄 핵에 중성자를 쏘아 바륨을 생성한 화학자 오토 한의 실험 결과를 분석해 처음 핵분열이라는 개념을 만들었다. 마이트너는 우라늄 원자핵이 작은 원자핵으로 분열할 때 2억 전자볼트나 되는 엄청난 에너지가 나온다는 것을 계산을 통해 밝혔다. 이것은 원자의 10의 30승 배 크기인 쌀알을 움직일 수 있는 힘으로, 축구공으로 달을 차 날려버리는 것에 비유할 수 있다.
원자 핵을 묶어주는 강력이 붕괴될 때 어마어마한 힘이 나온다는 이 발견으로 물리학자들은 공포를 느꼈다. 이 힘이 처음 이용 된 것은 2차 세계 대전 시기로, 가장 먼저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무기로 전용한 것이 미국이다. 그들이 '맨해튼 계획'이라 부른 핵폭탄제조다. 이 계획의 주도자인 오펜하이머는 "결국 물리학자들은 죄악이라는 것을 알게 됐다"고 고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인류 처음으로 핵에 의한 수백만의 디아스포라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발생했다. 하지만 이에 그치지 않고, 66년이 흘러 일본은 2011년 도호쿠지역의 대지진과 쓰나미로 후쿠시마 핵발전소가 파괴되는 참사로 30만의 핵 디아스포라가 재차 발생하고 말았다. 내 카메라 앞에 선 일본인 시마무라 모리히코(56ㆍ 맨 오른쪽)씨는 원래 고베 출신이다. 20년 전 대지진으로 그는 모든 것을 잃고 난민이 되어 후쿠시마 이와키현에 재정착했다. 하지만 다시 이번 대지진과 핵발전소 사고로 그의 삶은 깊은 절망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두 번째 정처없는 디아스포라의 처지를 거절하고 "인간은 왜 사는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를 고민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떠나가 버려진 땅에 목화를 심었다. 목화는 철저한 방사능 검사를 통해 안전한 솜만으로 봉제인형이나 옷으로 만들어져 팔렸다. 이에 필요한 전기는 자신이 청년시절부터 관심있던 태양열을 이용했다. 함께하고자 하는 사람들과 '오텐도썬'이라는 조합도 만들었다. "후쿠시마가 좋아 떠날 수 없었습니다. 그리고 세상 사람이 오해하는 것처럼 모두 사람이 살 수 없는 곳은 아닙니다. 들어갈 수 없는 곳, 위험한 곳, 안전한 곳도 있습니다. 오히려 잘못된 정치와 정부의 무관심, 사람들 간의 갈등으로 집과 희망이 사라진 후쿠시마가 더 가슴 아픕니다."
핵 발전은 인류가 제어할 수 없는 핵 쓰레기와 폭발의 위험이 상존한다. 억지로 핵을 분열시켜 얻어내는 에너지는 가격도 비쌀뿐더러 뒤처리를 할 수 없다. 고리에서 시작된 핵발전소 23기, 밀양과 전국으로 뻗어나가는 거대 송전탑 같은 필수불가결 한 에너지라는 심연 속에서 번뜩이는 괴물의 얼굴이 우리를 쳐다본다. "앞으로 어떤 일을 하고자 할 때 후쿠시마의 실패가 기준이 되지 않을까요? 다시는 이런 실패가 일어나지 않도록 목소리를 내야 합니다. 그것만이 희망입니다"라는 시마무라씨의 이야기를 들으며 조용히 카메라를 내려놓는다. 그가 사는 곳으로부터 그리 멀지 않은 옆 나라 우리는 핵에 대해 얼마나 깊은 사색을 하며 살고 있는가.
*사진가 이상엽씨가 오늘부터 오피니언면 '사색의 향기'의 새로운 필진으로 합류합니다. 현재 한국비정규노동센터 이사인 이씨는 저서로 과 등이 있으며, 등의 전시전을 가진 다큐멘터리 사진가입니다.
이상엽 사진가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