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림 주민투표 결과 러시아와 합병이 압도적으로 지지를 받음에 따라 미국과 영국 프랑스 등이 광범위한 대러시아 경제제재에 들어갈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미국 양적완화 축소, 중국 경제성장 둔화, 신흥국 경기 부진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세계 경제가 ‘동서 냉전의 부활’이라는 새로운 악재에 맞닥뜨리면서 한치 앞도 분간할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됐다.
17일 국제금융센터 등에 따르면 러시아 루블화 환율은 올해 들어 11% 상승(루블화 가치 하락)했고, 러시아 주가는 26.4% 곤두박질쳤다. 러시아 중앙은행이 금융시장 안정성 확보를 위해 기준금리를 7.0%로 올렸지만, 서방의 경제제재가 본격화할 경우 러시아에 투자된 서방 자금이 대거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 러시아 투자은행 르네상스캐피털은 1, 2월 러시아에서 빠져나간 투자금은 330억달러에 달하며 이달 말까지 550억달러로 늘어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미국이 러시아에 대해 자산동결 조치를 시행할 것이라는 우려로 러시아 기업들이 미국 시중 은행에서 최근 수십억 달러의 자금을 인출하기도 했다”고 보도했다.
유럽연합(EU)이 러시아에 대한 추가 경제제재에 나설 경우, EU에도 상당한 부담이 될 전망이다. 러시아가 EU의 제3위 교역국인데다, 유럽 천연가스 수입량의 33%를 러시아에서 공급받고 있기 때문이다. 독일 기민-기사당의 중산층경제연맹 위원장인 카스슈텐 린네만 의원은 “독일에는 러시아 경제와 연관된 일자리가 20만개 이상 있다”면서 “제재는 독일 경제에 먹구름을 몰고 올 것”이라고 우려했다. 유럽 등 선진국의 경기가 침체되면 신흥국은 수출에 타격을 받게 된다. 특히 러시아 천연가스 공급 감소로 에너지를 비롯한 원자재 수입가가 상승하면 제조원가가 오르므로 전세계 경제의 성장 둔화도 피할 수 없다.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감소는 우리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가능성이 크다. 홍준표 현대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최근 보고서에서 과거 러시아산 천연가스 공급 중단 사례와 국제유가 변동을 비교해 크림반도의 긴장 국면이 3개월간 계속되고 원자재 불안심리가 확산하면 천연가스는 20%, 유가는 10% 이상 상승할 것으로 전망했다. 그 결과 투자·생산·내수·수출이 모두 부진에 빠져 한국의 경제성장률이 1년간 0.23%포인트 하락할 것으로 추산했다.
한편 우크라이나 사태로 시장에서 위험 회피 심리가 강해지면 신흥국에서의 자금 이탈 가능성도 점쳐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스탠더드은행의 티모시 애시 신흥시장 연구 책임자는 미 CNBC방송에 출현, “러시아가 크림 자치공화국을 합병한다면 신흥국 자산에 대한 매도세가 강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하지만 시장의 동요가 다른 신흥국이나 전 세계로 확산하지 않고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 그칠 것이라는 관측도 많다. CNN머니는 “유럽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는 우려를 반영한 러시아에 대한 제재 조치가 고위관료 등 개인에 초점을 맞췄다”며 경제 위기가 전세계로 파급되지 않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우리투자증권의 김병연 안기태 연구원은 “우크라이나 사태는 서방세계와 러시아의 전면전은 피한 채 결국 크림반도가 러시아의 영향권에 종속되는 것으로 종결될 것”이라며 “세계 금융시장에서 가장 우려하는 것은 천연가스 가격 급등이지만 미국의 전략적 비축유 방출과 셰일가스 수출 확대로 부담을 일부 상쇄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이동현기자 nani@hk.co.kr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