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크라이나 크림자치공화국 주민들은 16일(현지시간) 날이 밝자 하나 둘 신분증을 소지한 채 집을 나섰다. 이날 오전 8시(한국시간 오후 3시)부터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주민투표가 일제히 시작됐기 때문이다. 주민들은 섭씨 2도 안팎의 추운 날씨에도 불구하고 두꺼운 외투를 입고 발걸음을 재촉했다. 투표 현장을 취재하는 한 BBC 기자는 "투표가 시작된 지 불과 몇 분만에 유권자 60, 70명이 몰려 들었다"며 "76세인 한 여성 유권자는 러시아와 재결합하는 역사적인 선택을 위해 투표 시작 30분 전부터 와 기다렸다"고 전했다.
크림공화국의 러시아 귀속 여부를 결정할 주민투표가 16일 25개 지역, 1,205개 투표소에서 일제히 실시됐다. 유권자는 크림공화국 전체 주민 약 200만명 중 18세 이상 성인 남녀 약 150만명이다. 러시아 흑해함대 주둔지로 크림공화국 소속이 아닌 우크라이나 특별시인 세바스토폴 역시 같은 내용의 투표지로 192개 투표소(유권자 30만명)에서 주민투표를 했다. 세바스토폴은 공화국 소속이 아닌 별도 자격으로 러시아 합병을 추진하고 있다.
유권자들은 '크림이 러시아 연방의 일원으로 들어가는 것에 찬성하는가', '1992년 크림 공화국 헌법 복원과 크림의 우크라이나 일부로서의 잔류를 지지하는가'란 두 가지 질문 중 하나에 찬성 표시를 하면 된다. 크림 의회는 우크라이나가 독립한 이듬해인 1992년 '크림공화국도 우크라이나에서 독립한다'는 내용의 개헌안을 채택했으나, 우크라이나 중앙정부가 불허해 자치권을 부여 받는 선에서 타협했다. 따라서 두 번째 질문은 독립을 선포한 당시 헌법으로 복귀한다는 뜻이다. 질문은 크림 주민을 구성하는 민족들을 위해 러시아어, 우크라이나어, 크림 타타르어 3개 언어로 적혀있다.
투표는 오후 8시(한국시간 17일 오전 3시)까지 진행된다. 투표장과 주요 관청 건물에는 크림 정부 산하 경찰과 보안요원, 1만여명의 자경단원이 배치돼 경계를 폈다. 23개국에서 온 180여명의 참관단은 투표 진행 상황을 감시했다. 크림 지역은 물론이고 도네츠크, 카르키프 등 친러 성향의 우크라이나 동부 도시에선 러시아와 합병을 옹호하는 시위가 진행됐다.
크림 정부가 80%대의 투표율을 예상하는 가운데 이날 정오 현재 투표율은 44%를 넘어섰다. 미하일 말리셰프 크림 선거관리위원회 위원장은 "잠정 투표 결과는 투표 종료 3시간 후쯤 나올 것이며 최종 결과는 17일 발표될 것"이라고 밝혔다. 현지 여론조사기관 '스레스'의 최근 조사에 따르면 90% 이상이 크림의 러시아 귀속에 찬성할 것으로 예상됐다.
박민식기자 bemyself@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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