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의 방주 이야기는 누구나 알만하다. 인간들의 행태에 진노한 창조주가 대홍수로 인류를 벌했다는 이 신화적 이야기는 의문부호 몇 개를 낳는다. 왜 인간은 여전히 죄를 짓고 있는가, 노아는 신의 뜻을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수행했는가, 신이 저버린 사람들은 속수무책으로 벌을 받아들였는가… 영화 '노아'는 이런 의문에 답을 제시하려는 듯하다. 구약성서 창세기가 짧게 전한 이야기에 상상을 더하고 볼거리를 붙여 139분 동안 재미와 의미를 전하려 한다.
이 영화의 정체성은 감독 대런 애러노프스키에게서 찾을 수 있다. '파이'(1998)와 '레퀴엠'(2000) '레슬러'(2008) '블랙스완'(2011) 등이 그의 주요 전작들이다. 예술영화라는 수식이 따라 붙은 작품들이었고, 애러노프스키는 그의 예술적 자의식을 이들 영화로 발현했다. '노아'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애러노프스키는 최종 편집에 대한 스튜디오(파라마운트)의 간여에 완강히 맞섰고 블록버스터로는 드물게 감독 자신의 의견을 그대로 관철했다고 전해진다.
'노아'는 애러노프스키의 예술적 야심과 1억3,000만 달러의 물량이 구현한 스펙터클이 뒤엉키며 관객에게 낯선 체험을 안긴다. 여느 대작에선 접하기 힘든 철학적 화두를 던지면서도 장쾌한 볼거리를 제공하려 한다. 요컨대 '노아'는 '아트 블록버스터'라 불러도 무방하다.
영화는 아담과 이브 사이에 카인과 아벨 이외에도 3남 셋이 있었다고 가정한다. 아벨을 죽인 카인의 후예들은 도시를 형성하고 죄악을 저지르며 세상을 더럽히는 반면 노아(러셀 크로) 등 셋의 후손들은 신의 뜻에 따라 자연과 조화로운 삶을 살아간다. 인간들의 타락과 폭력에 환멸을 느끼던 노아는 꿈의 계시로 전해진 창조주의 뜻을 받들어 아내와 세 아들 등과 새로운 세상을 위한 방주 건조에 나선다.
노아의 신에 대한 믿음이 전반부를 이끈다. 카인 족속을 멸해야 한다는 사명감 속에서 그는 인간의 원죄에 대한 깊은 고민에 빠진다. 그는 에덴의 동산에서 쫓겨난 인간은 결국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다며 단죄의 대상으로 자신과 가족까지 올려놓아야 할지 고뇌한다. 이런 노아에게 그의 아내 나메(제니퍼 코넬리)는 "우리는 (가족을) 사랑하기에 선하다"고 가볍게 반박한다. 노아는 "놈들만(카인의 후예) 사악한 게 아냐"라고 응답한다. 사랑은 종족 번식으로 이어지고 가족의 안녕을 위해 사랑이 배제와 폭력으로 변질될 수 있음을 암시하는 대목이다. 세상의 근간을 이루는 사랑을 원죄의 근원으로 보는 감독의 견해는 노아의 번뇌로 이어진다 할 수 있다.
영화는 묵직한 질문이 형성한 무거움을 볼거리로 덜어낸다. 노아를 위해 창조주가 거대한 숲을 만들어 주는 기적, 노아의 방주 건조를 도와주는 돌 모양 거인들의 활약상 등이 바통을 주고 받는다. 카인의 후손들이 멸종 위기를 직감하고 방주에 올라타기 위해 아귀다툼을 벌이는 장면과 쏟아지는 폭우 속에 방주만 홀로 물 위에 떠있는 모습에서 시각적 쾌감은 정점에 달한다.
영화 뒷부분은 노아의 사명에 대한 광기 어린 집착으로 점철된다. 무사히 방주에 동물들과 가족들을 태운 노아는 신의 뜻에 따라 자신들이 마지막 인류여야 한다고 결론 내린다. 노아의 강경한 태도에 일라 등 가족들이 맞서며 영화는 또 다른 대립을 형성한다. 신의 뜻에 대한 해석과 인간 존재에 대한 회의와 반박이 지루하게 이어지는데 상업영화를 즐기러 온 관객들로선 입가에 절로 손이 갈만하다. 20일 개봉, 15세 이상 관람가.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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