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기관에 의한 대대적인 증거 조작이라는 오명을 남기게 된 '서울시 공무원 간첩 사건'을 수사하면서 국가정보원이 거액의 자금을 쏟아 부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주변에서는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보다 더 공을 들였으며, 위조로 드러난 문서 확보 등 수사 전 과정에 모두 수억원이 투입된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
국정원이 공들였던 유우성 사건
간첩사건 피고인 유우성(34)씨 변호인인 김용민 변호사는 13일 "국정원 수사관이 유씨의 동생 가려씨를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이 사건 때문에 돈을 얼마나 많이 쓴 줄 아느냐'는 말을 했다"고 전했다. 사정기관 관계자도 "이 사건에 대한 국정원의 수사 인력과 비용 투입은 상당할 수밖에 없었다"며 "적게 잡아도 사건 기획에 들어간 돈만 4, 5억원은 될 것이라는 얘기가 돌 정도로 국정원이 공을 들였다"고 전했다.
통상 국정원에서는 사건을 S, A, B, C 등으로 등급을 나누는데, 이 사건은 A급으로 분류된 것으로 알려졌다.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비서 사건 정도를 S등급으로 취급한다고 한다. 지난해 이석기 의원의 '지하혁명조직(RO)' 사건도 B등급으로 분류돼 유씨 사건보다 단계가 낮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유씨 변호인측은 "유씨 사건이 국정원의 대선 개입 의혹이 확산될 무렵 터졌고, 유죄가 선고되면 (야당 인사인)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공격 빌미로도 쓰일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고 해석했다.
특히 유씨 사건은 중국을 오가며 수사가 진행됐고 여러 명의 외부 협력자가 동원됐으며, 여러 건의 문서 입수 과정에도 별도의 돈이 들었다. 지난 5일 자살을 시도한 국정원 협력자 김모씨는 "국정원으로부터 가짜 서류 제작비 1,000만원과 두 달 봉급 600만원을 받아야 한다"고 유서에 적시했다. 또 유씨 수사가 첩보 단계부터 최소 5년 이상 이뤄졌다고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상당한 금액의 활동비가 투입됐을 것이라는 추정이 가능하다.
이런 사건에서 증거조작으로 드러나 조직 전체가 위기를 맞자 국정원 내부에서도 대공수사국에 대한 불만이 팽배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공수사국 내부의 과잉경쟁도 증거조작의 한 원인으로 지목된다. 주요 간첩 사건을 적발해 유죄를 받아낼 경우 특진 등의 혜택이 주어지는 반면, 무죄가 나면 인사상 불이익은 물론 팀 전체가 해체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 파견 검사 역할 어디까지
하지만 국정원의 무리수도 검찰이 제대로 수사를 지휘했다면 얼마든지 제어가 가능했다. 지금까지 수사에서 검찰의 증거조작 연루 여부가 명확히 드러나지는 않았지만, 검찰이 제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오히려 검찰이 조작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재판에서 유씨의 유죄를 무리하게 주장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게다가 유씨 재판을 맡고 있는 이모 부장검사가 국정원이 이 사건을 수사할 당시 국정원에 파견돼 법률지도관으로 일하면서 수사 초기부터 관여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검찰 책임론'의 불씨가 커지고 있다. 법률지도관은 내사 단계에서 감청이나 체포영장 등을 신청해 수사로 전환할 때 '영장 청구가 가능할 정도의 혐의가 입증됐는지' 등을 조언하기 위해 사건 기록 검토를 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검찰이 국정원의 증거 위조를 가려내지 못한 수준이 아니라 증거 위조 과정에 어떤 식으로도 개입됐다는 의혹이 제기되는 이유다. 실제 이 검사는 재판 과정에서 변호인단의 증거 위조 의혹 제기를 적극 부인해 왔다.
김용민 변호사는 "검사가 국정원에 파견돼 수사 과정에 참여했다면 사건에 어느 정도 개입했는지, 어떤 역할을 했는지 철저하게 밝혀내야 한다"며 "검사들이 위조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보며 검사들에 대해서도 기소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남상욱기자 thoth@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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