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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밭 갈아보며 운전자 마음 헤아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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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접 밭 갈아보며 운전자 마음 헤아렸죠"

입력
2014.03.13 1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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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희(43) LS엠트론 차장은 국내 첫 '트랙터 디자이너' 다. 1995년 LS엠트론(옛 LG전선) 입사 이후 20년 동안 한 우물만 팠다.

일반 승용차라면 모를까, 미적 감각과는 도무지 거리가 멀 것만 같은 트랙터에도 과연 디자인이 필요한 것일까. 그는 13일 본지 인터뷰에서 "겉은 무뚝뚝하고 거칠 것만 같지만 트랙터의 속은 한 없이 예민하고 섬세하다"고 했다. 멋지고 화려한 디자인 보다는, 오랜 시간 앉아 일을 해야 하기 때문에 진동 소음을 줄여 운전자에게 최대한 편안함을 느끼게 해주는 게 것이 자신의 역할이라고 했다.

박 차장은 "입사 때만 해도 트랙터를 디자인 하는 것 자체가 흔치 않아 자동차처럼 디자인을 돕는 프로그램이나 설비가 없었다"며 "직접 트랙터를 몰며 땅도 파고 밭 갈아보고 설계 팀과 공부하며 처음부터 알아 가야 했다"고 말했다.

그의 아버지는 전북 완주에서 그가 디자인한 트랙터를 타고 농사를 지으셨다. 박 차장은 "지방 곳곳을 다니며 농사 짓는 많은 아버지들을 만나 불편해 하시는 점을 여쭙고 이를 해결하려고 했다"고 전했다.

그 결과 아주 섬세하고도 실용적인 탄생할 수 있었다. 예컨대 운전자 눈 앞에 있는 에어컨이 시야를 가려 장시간 작업을 하면 눈의 피로감을 높인다는 의견을 반영해 기존 위치보다 2cm 높이기도 했고, 오랫동안 논밭에서 일하다 보면 따뜻한 물이나 시원한 음료수 한 모금이 간절할 때가 많다는 것을 알고 운전석 옆에 소형 냉온통을 달았다. 운전석 주변 여기저기 흩어져 있던 작업용 레버들을 한데 모아 왼손으로 운전하면서 오른손으로는 작업을 할 수 있게 정리했다. 박 차장이 디자인한 트랙터(XR 모델)은 지난해 우수산업디자인 최우수상을 받는 등 대외적으로 인정 받고 있다.

현재 전 세계 트랙터 시장 규모는 약 50조원. 해 마다 5% 안팎의 꾸준한 성장률을 보이고 있다. LS엠트론 관계자는 "각국 정부가 식량 안보 등을 이유로 곡물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 트랙터 등 농기계 활용을 지원하고 있다"며 "눈 치우기, 잔디 깎기, 썰매 끌기 등 트랙터에 부착 가능한 도구에 따라 쓰임새가 40가지가 넘는 것도 성장세 유지 이유"라고 설명했다.

트랙터 디자인은 세계 각 지역 고객들의 체형은 물론 생활 습관, 문화까지도 고려한다. 박 차장은 "덩치 큰 미국, 유럽인들의 체형 파악을 위해 디자인 전에 현지 인체공학 전문가들과 손을 잡고 철저히 데이터 분석을 한다"며 "서양인들은 불룩 나온 배 때문에 핸들이 배에 자꾸 걸리고 허리를 숙여 바닥에 있는 주차 레버를 작동하기 힘들어하는 것을 알고 운전석 옆으로 옮겨 좋은 반응을 얻었다"고 했다. 또 최대 시장인 미국에서는 취미로 텃밭을 가꾸는 등 농사를 짓는 문화가 자리를 잡는 것을 감안해 조작이 쉽게 소형 트랙터 디자인을 좀 더 단순하게 하고 있다. 터키에선 트랙터가 이동 수단으로도 쓰이기 때문에, 운전석 옆에 2,3명은 충분히 앉을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는 식이다.

현지 맞춤형 디자인에 힘입어 LS엠트론의 트랙터는 해외 시장에서 승승장구 중이다. LS전선에서 독립한 2008년 당시 해외 매출은 429억원 이었지만 지난해는 9배에 달하는 3,719억원을 기록했다. 수출국도 40개를 넘어섰다. 박 차장은 "수출국이 늘수록 현지 사정을 알기 위한 숙제는 많아지지만 해외 시장 공략에 작은 보탬이 될 수 있어 즐겁다"고 말했다.

박상준기자 buttonpr@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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