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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악의 축" 이란 "사탄의 화신"… 35년 원수 잊고 친구 될까

입력
2014.03.13 18: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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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전 전반기 끈끈한 동맹관계1979년 호메이니 혁명 당시 美대사관 인질사건으로 악화하타미 대통령 땐 부시가 외면… 아마디네자드는 反美 강화오랜 경제제재에 지친 이란 중도 로하니 대통령 되며 변화美도 중동 난제 돌파구 절실P5+1 핵협상으로 새 전기… 포괄적 일괄타결 여부가 관건

2013년 11월 24일 제네바에서 낭보가 날아들었다. 역사적인 이란 핵협상을 합의했다는 소식이었다. 합의 당사자는 P5+1(유엔안보리 상임이사국 5개국 및 독일)과 이란이다. 이 합의는 2002년 8월,이란 반정부단체인 '국민저항운동'이 나탄즈와 아라크 비밀 핵시설을 폭로하면서 시작된 이란 핵문제의 첫 타결안인 셈이다.

합의와 번복을 거듭했던 북한의 핵프로그램과는 달리 이란은 사상 처음 명문화된 핵관련 합의에 서명했다. 한번 맺은 약속은 결코 파기하지 않는다는 페르시아 상인들의 신용을 믿고 싶은 걸까. 국제사회는 우려 섞인 기대를 갈무리한 채 본 협상의 진전을 예의주시하고 있다.

갈 길은 멀다. 본 합의안은 향후 6개월간의 초기단계 신뢰구축 협상에 불과하다. 그간 끝간 데 없는 불신을 서로 쌓아왔던 국제사회와 이란, 특히 미국과 이란간에 과연 믿을만한지 한번 시험해보자는 차원의 합의이다. 6개월간의 탐색전이 끝나면 본격적으로 포괄적 일괄타결 협상에 나서게 된다. 1979년 이슬람 혁명 이후 원수지간으로 지내 온 미국과 이란은 지금은 그야말로 살얼음을 걸으며 신뢰를 조금씩 쌓아가는 중이라 할 수 있다.

미국의 대이란 트라우마 '테헤란 인질사건 '

양국 갈등의 깊은 뿌리는 어디에서 발원할까. 본래 미국과 이란은 냉전 전반기에 둘도 없는 동맹관계였다. 당시 이란의 팔레비 국왕은 미국과 전략적 이해관계를 같이했다. 혁명노선의 소비에트로부터 왕실의 안보를 지키기 위해서는 미국의 도움이 필수였다. 미국으로서는 소련 봉쇄 전선 구축에서 터키와 함께 이란은 든든한 우방이었다.

그러나 1979년 호메이니 혁명은 일거에 양국관계를 대척에 세워놓았다. 무엇보다 미국민들은 테헤란 미대사관 인질사건을 잊지 못한다. 전쟁에서 지는 것은 용납할 수 있으나 자국 민간인들이 혁명세력에게 피랍되어 인질로 잡혀있었음에도 속수무책이었던 모습은 초강대국 미국으로서는 수모를 넘어서 강렬한 트라우마였다.

이란 역시 미국에 대해서는 구원(舊怨)의 앙금이 남아있다. 이란사람들은 1951년 최초의 민선총리로 선출된 민족주의자 모함메드 모사데크가 석유 국유화를 선언하자 미국과 영국이 공산주의로 몰아 실각시킨 사실을 생생히 기억하고 있다. 비록 팔레비 왕조시절 미국과 가까이 지냈으나 이란인들의 속 깊은 곳에는 미국이 보여주었던 행태에 대해 뿌리 깊은 불신을 갖고 있는 것이다. 언필칭 미국은 민주주의를 강조하지만, 정작 속으로는 자국의 이익에 집착하여 중동 역사상 첫 민선지도자를 축출했다고 이란은 미국을 비난한다.

양국의 골은 깊을 대로 깊어져 이란은 미국을 사탄의 화신이라 부르고, 미국은 이란을 악의 축으로 불러왔다. 더욱이 양국 지도자들간의 엇갈림은 상황을 더 악화시켰다. 비교적 미국에 우호적이던 이란의 하타미 대통령 시절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하타미의 친화 제스처를 외면했다.

반면 미국의 오바마 정부가 들어섰을 때, 이란은 강경파 아흐마디네자드 정권이 자리를 잡고 미국을 초지일관 비난해왔다. 이 과정에서 미국은 경제제재를 한층 강화시켰고 이란 지도부는 이슬람 이념을 더욱 강조하며 반미 노선을 더욱 강화시켰다. 이대로 가면 양국은 어떤 형태로든지 충돌이 불가피한 상황이었다.

이란 중산층의 변화 욕구가 개선 계기

그러나 상황은 급반전했다. 오랜 경제제재로 인해 내핍생활을 해오던 이란의 중산층에 변화의 조짐이 생긴 것이다. 그들은 변화를 희구했다. 결국 지난해 6월 대통령 선거에서 중도파 하산 로하니가 당선했다. 큰 이변이었다. 본디 로하니 후보의 당선가능성은 높지 않았다. 선거 2주전까지만 해도 4, 5위권을 맴도는 수준이었다. 전문가들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가 지원하는 강경파 후보의 당선을 예견했다.

그러나 예상을 뒤엎고 로하니 후보는 1차투표에서 과반수를 획득, 결선투표 없이 당선됐다. 이는 중산층 경제붕괴에 대한 표심의 심판이자 변화를 명령하는 결과였다. 기존의 근본주의 종교노선에서 벗어나 경제발전을 추구하자는 유권자들의 외침이었다. 로하니 내각은 안보와 치안은 보수주의 각료들로, 반면 외교와 경제는 실용주의 각료들로 채웠다. 미국을 잘 아는 각료들이 대거 등용됐다. 오바마 내각보다 로하니 내각 각료들이 미국대학 박사학위를 더 많이 갖고 있다는 점은 주목할만하다. 오바마 정부는 곧바로 비밀 고위급 대화채널 개통에 합의했다.

이란이 경제제재의 돌파구로 선거를 통해 지도자를 바꾸었다면, 미국은 대이란 정책전환을 통해 외교적 돌파구를 시도하려 한다. 미국은 지쳐 있다. 이라크와 아프간에서의 전쟁은 미국의 피로도를 극도로 가중시켰다. 전쟁으로 인한 재정적자와 이슬람 전사들과의 싸움에서 희생된 장병들의 숫자는 미국민들의 반전 감정을 고조시켰다.

이란 없인 시리아 내전 해결 어려워

이런 맥락에서 오바마 행정부는 이전 부시행정부의 일방주의적 개입 독트린을 벗어나서 '비폭력적 다원주의'를 채택한다. 비폭력성을 전제로 한다면 즉 대량파괴무기를 개발하지 않고 테러리즘과 단절한다면 어떤 형태의 정부와도 협력하겠다는 새로운 정책노선이다. 이는 아시아 재균형과도 맞물려있으며 이란을 비롯한 중동지역내 주요국가와 무력긴장 대신 외교를 통해 현안을 해결하겠다는 입장이다. 비록 가장 적대적인 이란이지만, 오히려 이란과 관계개선이 가능하다면 상황을 일거에 반전시킬 수 있다는 계산도 맞물린 것으로 보인다.

현재진행형인 비극적인 사건인 시리아 내전은 이란의 개입 없이는 해결책을 찾기 어려운 상황이다. 바샤르 알 아사드 정권의 보호자 역할을 이란이 자임하고 있다. 향후 권력이양 과정에서 이란의 적극적 개입이 수반될 경우 아사드 정부를 설득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한편 이스라엘의 안보를 위협하는 헤즈불라도 이란의 영향력 하에 복속되어 있다. 여기에 아프가니스탄 문제도 이란의 역할을 기대할 수 있는 여지가 있다.

하나같이 난제들이다. 미국으로서는 개입의 여지나 수단이 별로 없는 이들 국가들에 이란이 가진 영향력을 활용할 수 있음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오바마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이란과의 협상에 나섰다. 35년간 이란과의 절연을 극복함으로써 새로운 외교지평을 열고자 하는 시도로 보아줄 수 있지 않을까.

미국과 이란 미묘한 이해 일치

이란으로서도 다른 대안은 딱히 보이지 않았다. 국제사회의 경제제재가 한층 더 강화되고 석유 판매 및 금융 거래가 단절된 상황에서 내핍경제로만 국가를 지탱하기에는 이미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었다. 자국의 자존심을 유지하고 이란 이슬람 공화국의 정체성만 지켜내는 조건만 충족된다면 이제는 미국과의 협상을 통해서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할 시점이라는 국민들의 정서가 표로 나타났다. 제네바 초기단계 합의 직후부터 이란 석유개발과 각종 산업투자 논의가 활발하다는 점은 이란의 속사정을 방증한다.

쉬운 여정은 아닐 것이다. 일단 이란과 핵협상으로 미국의 고전적 동맹국인 이스라엘과 사우디아라비아가 펄펄 뛴다. 중간선거를 앞두고 유태인들의 결집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의원들은 앞다투어 대이란 경제제재 강화를 주장한다. 이란을 최대 위협으로 상정하는 사우디아라비아는 한발 더 나아가 대미관계의 전면적 재검토 가능성을 운운하며 으름장을 놓고 있다. 심지어 미국의 아시아 재균형(pivot to Asia)처럼 사우디도 피봇 투 차이나 (pivot to China)를 할 수도 있다며 미국을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미국으로서는 이번 이란과 협상카드를 쉽게 버릴 수 없다. 이런저런 연유로 만일 이란 핵협상이 결 될 경우 이란은 명시적 핵무기 개발로 나아가려 할 것이다. 이 경우 미국은 무력 사용 카드밖에 남지 않으며, 현 재정상황과 국민여론에 비추어볼 때 도무지 사용할 수 없는 카드가 되기 때문이다. 이란 역시 마찬가지다. 그 동안 충분히 견딘 내핍경제가 이제 조금씩 해소되기 시작한 즈음에 협상이 결렬됨으로써 다시 한번 가혹한 경제제재에 직면하게 될 경우 정권의 미래도 불투명해질 가능성이 높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ㆍ 중동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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