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밖에서 백성들이 굶주릴 때 예수께선 끊임없이 '어서 저들에게 먹을 것을 내어주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나는 자기 안위를 지키느라 속으로 병든 교회보다 길거리에 나가서 멍들고, 상처받고, 더러워진 교회를 택하겠습니다."
한국천주교주교회의(의장 강우일 주교)가 지난달 15일 번역 출간한 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이 전하는 메시지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6월 을 낸 적이 있지만 전임 베네딕토 16세가 그 책의 초안을 주로 마련했다는 점에서, 이번 이야말로 교황 취임 이후 낸 첫 저술이라고 할 수 있다.
5개장, 288개항으로 구성된 이 책은 지난해 11월 세계 가톨릭교회가 '신앙의 해'를 마치며 발표한 교황의 첫 권고문으로, 그의 8월 방한을 앞두고 한국에서 큰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13일 주교회의에 따르면 이 책은 출고도 되기 전에 초판 5,000부가 예약 판매됐으며 발행 4주 만인 13일 현재 5쇄, 2만5,000부가 팔렸다. 성직자와 수도자, 신학연구자를 주요 독자로 둔 교황 문헌이 대개 3,000~4,000부 정도 판매되는 점을 감안할 때 이 책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황은 책에서 현대 세계의 경향과 도전 과제, 복음 선포의 원리와 방법 등을 편안하고 쉬우면서도 날카롭게 지적한다. 교황의 친숙하고 소박한 언어가 빛난다는 평가도 나온다. 예컨대 교황은 그리스도인의 자질을 얘기하면서 "복음을 전하는 이들은 절대로 장례식에서 방금 돌아온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고 명랑한 어조로 말한다. 교황은 또 "교회는 통행료를 받는 곳이 아니다"며 "교회는 하느님께서 머무시는 집으로서 모든 사람을 위한 자리가 마련된 곳"이라고 강조한다. 사제들에게는 "고해소가 고문실 같아서는 안 되고 우리가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자극을 주시는 주님의 자비와 만나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일깨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배제와 불평등 사회를 날카롭게 비판하기도 한다. 그는 "오늘날은 경쟁과 적자생존의 법칙이 지배하고 있으며 힘 있는 사람이 힘 없는 사람을 착취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그러면서 "배제와 불평등의 경제에 대해 '그래서는 안 된다'고 말해야 한다"며 "이런 경제는 사람을 죽인다"고 지적한다. 그는 "노숙자가 길에서 얼어 죽은 것은 기사화하지 않으면서 주가가 조금만 내려가도 기사가 되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이냐?"고 질책하기도 한다.
하지만 교황은 몇 가지 점에서 보수적인 입장을 고수했다. 교황은 교회의 의사결정과정에 여성이 참여할 수 있지만 여성사제 서품에는 반대했다. 낙태에 대해서도 "모든 이의 인권을 옹호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태아의 생명도 교회는 옹호해야 한다"며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한편 한국남자수도회 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는 한국천주교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 및 인터넷언론 가톨릭뉴스지금여기와 공동으로 15일 오후 2시 서강대에서 '복음의 기쁨과 한국교회'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연다. 심포지엄에서 주교회의 의장 강우일 주교가 '복음의 기쁨, 새롭고 생생한 교회를 위해'라는 주제의 기조연설을 하고 예수회 박상훈 신부와 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가 각각 '교회는 야전병원이다', '세상을 위한 복음'을 주제로 발제한다.
권대익기자 dkwon@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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