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거운 배낭 탓에 어깨가 무너질 것 같았고 다리에 힘이 풀려 밤새 비틀거렸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행복했어요. 지금 나의 고통이 누군가의 웃음이 될 생각을 하니 그 순간 눈물이 날 만큼 행복했어요."
경희대 치의학전문대학원 3학년에 재학 중인 정준오(31)씨. 그는 지난 2월 요르단 와디럼사막에서 250㎞를 내달렸다. 일주일 치 음식과 침낭 등이 든 10㎏이 넘는 배낭을 메고 7일 동안 펼쳐지는 지옥의 레이스에서 그는 46시간대의 완주기록으로 전 세계에서 모인 참가자 190명 중 100등으로 마라톤을 마쳤다.
평균 해발 1,000m가 넘는 고지대 사막, 뜨겁다 못해 온몸이 타오를 것 같던 모래바람, 매일 눈뜨자마자 10~12시간씩 하루 40km씩을 달리는 강행군…. 하루에도 3~4명씩 탈수증세를 호소하며 들것에 실려나갔다. 전문 마라톤 선수라도 고개를 내저을만한 이 대회에 정씨가 망설임 없이 도전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우연한 기회에 정씨는 장애인 구강보건 비영리단체 '스마일재단'이 '저소득 중증장애인의 치과 진료를 위한 전신마취 비용 지원사업'을 진행 중이란 소식을 접했다. '봉사하는 의사'가 되겠다는 포부를 안고 서른이란 남들보다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지만, 정작 학교 수업 따라가기에만 급급한 자신의 모습에 회의가 들던 참이었다. 정씨는 "행동조절이 어려운 중증장애인들은 치과 진료 시 전신마취가 필요한데 마취 비용 때문에 구강질환 치료는 물론 간단한 스케일링조차 못 해 상태가 더 악화한다는 말을 들었다"며 "비록 학생이지만 의사를 꿈꾼다면서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을 못 본 척할 수는 없었다"고 말했다.
요르단으로 떠나기 전 그는 한 포털 사이트가 운영하는 기부 저금통 홈페이지에 자신의 사막 마라톤 계획을 알렸다.'250㎞을 달린다'는 의미와 함께 환자 한 명의 전신마취 비용이기도 한 250만원을 기부금 목표로 삼아 자신의 홈페이지를 찾는 사람들의 후원을 기다렸다. 이후 정씨의 소식을 접한 기부자들이 그를 응원하며 1,000원부터 1만원까지 십시일반 마음을 보탰다. 하지만 아직 애초 목표액을 달성하지는 못한 상태다. 정씨는 "내가 유명 인사였다면 금방 기부금이 모였을 텐데 그러지 못해 수술을 기다리는 중증장애인들에게 죄송할 뿐"이라며 "기부자들의 정성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기 위해 참가한 마라톤이지만 그분들의 고마운 마음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한 게 없어 부끄럽다"고 말했다.
대학 신입생이던 2001년부터 각종 봉사활동을 하며 학창시절을 보낸 정씨. 군악대를 다녀온 경험을 살려 구세군 자선냄비 옆에서 색소폰을 연주했고, 과거 천문우주학과에 재학 중이던 시절엔 '우주에서 가장 따뜻한 고구마'라고 쓴 군고구마를 겨우내 팔아 모은 돈 전액을 봉사단체에 기부하기도 했다.
그는 "똑같은 봉사라도 그냥 하지 말고 좀 더 의미 있게, 재미있게 그리고 반드시 내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을 도우려는 생각이 자신을 행복하게 만드는 방법의 하나였다는 그가 정해 놓은 봉사의 원칙이었다.
조아름기자 archo1206@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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