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릇한 성적 은유와 과다 노출로 승부하는 걸그룹이 아니다. 대형 기획사의 지원을 등에 업은 '넘사벽(넘을 수 없는 사차원의 벽)'도 아니고 남녀노소 좋아하는 국민 걸그룹도 아니다. 남들은 'B급'이라 하지만 A급 걸그룹도 갖지 못한 독특한 개성이 있고, 규모는 작아도 남부럽지 않은 팬덤이 있다. 독특함에 있어선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두 걸그룹 오렌지캬라멜과 크레용팝이 잇따라 신곡을 발표하고 활동을 재개한다.
애프터스쿨의 세 멤버 나나, 레이나, 리지로 구성된 오렌지캬라멜이 12일 디스코 장르의 신곡 '까탈레나'를 공개하고 방송 활동을 시작했다. 유머러스한 B급 코드는 신곡에서도 변함이 없다. '까탈스럽지만 매력 있는 여자'라는 뜻의 노래 제목에서 인어들이 초밥 신세가 된다는 만화적 상상력의 뮤직비디오, 1980년대 유로 디스코 풍의 음악 등 어느 것 하나 키치적이지 않은 게 없다. 원색과 파스텔 컬러를 중심으로 한 화사한 비주얼, 유치하고 발랄한 만화적 상상력, 복고풍의 디스코 음악은 '아잉' '상하이 로맨스' '립스틱' '방콕시티' 등을 통해 이들이 일관성 있게 밀어붙인 콘셉트다.
오렌지캬라멜은 아이돌 그룹 중에서도 가장 성공한 유닛 그룹으로 꼽힌다. 유닛 그룹이 대체로 모체 그룹의 부분 집합이라는 한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과 달리 오렌지캬라멜은 애프터스쿨과 전혀 다른 콘셉트를 내세워 원래 그룹보다 더 큰 인기를 누리고 있다. 섹시와 청순으로 양분된 걸그룹 세계에서 B급 정서와 키치라는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하며 틈새시장 공략에 성공한 것이다.
지난해 가장 성공한 신인 걸그룹으로 꼽혔던 크레용팝도 29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쇼케이스를 열며 신곡을 공개한다. 운동복에 헬멧을 착용한 복장에 '직렬5기통 댄스'라는 독특한 안무로 화제를 모았던 이들은 헬멧과 운동복 대신 전통의상을 응용한 의상을 선택했다. 신곡은 크레용팝의 '댄싱퀸' '새터데이 나이트' 등을 작곡한 강진우씨가 썼다. 소속사 크롬엔터테인먼트의 이성수 실장은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할 수 있는 희망적인 음악, 흥이 나는 음악에 초점을 맞췄다"고 설명했다.
크레용팝은 오렌지캬라멜처럼 B급 취향을 자극하는 의상과 단순한 음악, 재미있는 안무로 주목 받았다. 음악적인 완성도가 높은 것도 아니고 멤버들의 가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니지만, 개성 넘치는 B급 코드가 기존 아이돌 그룹의 식상한 패턴에 질린 대중을 사로잡았다.
오렌지캬라멜과 크레용팝은 팬들도 독특하다. 정상급 걸그룹처럼 팬덤이 두텁고 폭넓지는 않지만, 소수의 팬들로부터 열정적인 지지를 받는다. 크레용팝에 열광하는 아저씨라는 뜻의 '팝저씨'가 대표적이다. 이들은 크레용팝과 같은 의상을 입고 각종 행사를 따라다니며 뜨거운 응원을 보낸다. 팝저씨는 최근 미디어 아티스트 정연두씨에 의해 팝아트의 소재로 등장하기도 했다.
대중음악평론가 강태규씨는 "크레용팝과 오렌지캬라멜처럼 개성 강한 그룹들이 대중음악의 스펙트럼을 다양하게 만든다"면서 "이 같은 시도가 대중문화계의 엄숙주의를 깨는 한편 아이돌 산업의 불황을 타계할 수 있는 또 하나의 방편이 되기도 한다"고 말했다.
고경석기자 kav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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