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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철순의 즐거운 세상] 섞어라 마셔라 (3)

입력
2014.03.13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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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젊은이들이 순하고 부드러운 술을 선호함에 따라 섞어서 마시는 혼합주의 종류도 정말 다양해졌다. 섞는 방법의 대세는 전통적 방식으로 ‘순진하고 무모하게’ 술과 술을 섞는 게 아니라 술에다 각종 음료, 특히 과즙 음료를 붓는 것이다.

원래 음식이든 인종이든 문명이든 뭐든 섞으면 새롭고 기이한 것이 나오게 마련이다. 혼혈엔 미인이 많다. 혼식은 몸에 좋다. 모든 것이 섞여서 이루어지는 조화와 원융의 원리라고 말하면 너무 거창할까? 어쨌든 지금은 ‘퓨전의 시대’, ‘칵테일의 시대’인 것이다.

그런 혼음(混淫이 아니라 混飮이다!)의 칵테일주 중에서 대표적인 게 ‘영웅본색주’다. 소주와 홍초 병을 주둥이끼리 맞춰 거꾸로 꽂아서 섞는 술이다. 그러면 술의 색깔이 진한 노을처럼 멋진 빨강이 된다. ‘영웅본색’은 원래 홍콩 느와르영화의 대표작 제목인데, 그 색깔이 영웅의 색인 걸까? 잘 모르겠지만 영웅은 역시 빨강과 어울리지 파랑과는 잘 맞지 않는 것 같다.

소주 한 잔에 홍초를 살짝 섞은 고진감래주, 맥주 한 잔에 홍초가 가라않게 섞은 로맨틱노을주라는 것도 있다고 한다. 말은 그럴듯하지만 겨우 그런 걸 홀짝거리고 마시면서 ‘쓴 게 다하면 달콤한 게 온다’,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하고, 아무데서나 로맨틱 찾고 분위기 챙기는 게 우습다. 좌우간 그것도 술은 술이다.

빨강은 또 있다. 소주병을 따고 한 잔을 따라낸 다음 그만큼 빈 공간에 홍초를 부어 섞어 만든 술이다. 이름하여 ‘홍익인간주’다. 원래 홍익인간의 홍은 紅이 아니라 弘이어서 빨간색과는 거리가 있다. 한자를 잘 모르거나 알면서도 한글 발음만 가지고 만든 술 이름인 셈이다. 이렇게 홍초를 이용한 칵테일주가 많은 걸 보면 홍초 판매전략이 먹힌 게 아닌가 싶다.

나는 소주병을 따고 빈 공간에 그 만큼만 식초를 부어 마셔본 적은 있다. 이름도 붙이지 않았지만, 술맛은 아주 좋았다. 이 술의 제조법은 ‘삼위일체 장수법’으로 유명했던 왕년의 명 영어강사 안현필(1913~1999) 씨가 알려주었다. 안씨는 초콩의 장점과 효능을 수없이 반복해서 들려줄 만큼 열광적인 ‘식초의 전도사’였는데, 100세 장수를 장담한 것과 달리 구순도 못 되어 아쉽게 타계했다.

칵테일주에는 ‘소원주’라는 것도 있다. 이름은 거창하지만 알고 보면 간단하다. 소주와 원두커피를 1대 5의 비율로 섞은 술이다. 나는 일부러 이런 술을 만들어 마신 적은 없다. 소주를 반주로 식사를 마친 뒤 커피를 마실 때(정확하게 말하면 종업원에게 온갖 아양을 다 떨어 커피를 얻어 마실 때) 남은 소주를 부어서 마시는 일은 많다. 그러면 아깝게 남기는 소주도 없게 되고 커피 맛도 좋아진다. 술 마시려고 커피를 섞는 사람들과, 커피 마시려고 점잖게 술을 붓는 나는 엄연히 다른 것이다.

사실 음료 혼합식 칵테일주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정직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마신 혼합주 중에서 가장 복잡한 것은 ‘소백산맥’, 그런 것이었다. 소주 백세주 산사춘 맥주를 섞은 게 소백산맥이다. ‘소복산맥’도 있다. 이것은 소주와 복분자 산사춘 맥주의 조합이다. 주전자를 이용해 술을 섞는데, 그 비율은 잘 생각나지 않는다. 유감스럽게도 받아 마시기만 했지 직접 만들어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내가 즐겨 만들어 돌리는 술은 ‘양푼주’다. 커다란 양푼에 소주와 막걸리를 1대 1로 콸콸 부어서(대개 2병씩 들어간다.) 그걸 참석자 전원이 돌아가며 마시는 우의 앙양·친목 강화·화합 촉진주다. 제조자인 내가 먼저 마시고 양푼을 돌리면 분위기가 금세 좋아지고 시끄러워진다. 술이 약하거나 몸이 안 좋은 녀석은 입만 대고 마시는 척하다가 양푼을 넘긴다. 또 입 안에 든 고춧가루를 본의 아니게 양푼에 띄우는 녀석도 있다(윽, 더러워!). 매달 두 번째 목요일은 고등학교 친구들 만나는 날인데, 오늘 저녁에도 나는 양푼주 한잔 하러 간다.

임철순 한국일보 논설고문 fusedtree@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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