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핵이 아닌 일본핵이 국제사회 이슈로 등장했다. 글로벌 감시역으로 통하는 미국 공공청렴센터(CPI)가 일본 롯카쇼무라 핵 재처리 공장 가동을 둘러싼 미일 대립을 폭로하면서다. CPI는 특히 롯카쇼무라 공장 가동이 미일 대립 수준의 문제가 아니라 일본의 핵 야욕을 드러낸 것일 수 있다며 주의를 환기시켰다. 핵전문가들도 동북아와 전세계에 핵확산을 증폭시킬 악재라며 롯카쇼무라 공장 가동 계획을 비판하고 있다. 오는 24일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도 거론될 것으로 알려져 일본핵 이슈가 국제문제로 부상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의심받는 일본의 핵 야욕
일본은 당초 핵의 평화적 이용계획에 따라 롯카쇼무라 공장 건설에 들어갔다. 사용후 핵 연료를 롯카쇼무라 공장에서 재처리해 플루토늄을 생산한 뒤, 다시 이를 원료로 사용하는 고속증식로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한다는 계획이었다. 그러나 지난달 일본 정부가 발표한 '에너지 기본계획'에는 플루토늄을 원료로 하는 고속증식로의 상업화 시기가 빠져 있다. 기술개발의 어려움으로 가동 시기가 불투명해진 때문이다. 롯카쇼무라 공장을 가동해 당장 필요 없는 플루토늄을 대량 생산하려는 의도가 의심 받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일본은 미래 핵발전 연료로 플루토늄이 필요하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그러나 CPI는 현재 일본에는 1㎏의 플루토늄도 필요하지 않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간 아베 신조 정부가 보여준 극우 행보 및 급변하는 동북아 안보환경을 감안할 때 일본이 롯카쇼무라 가동을 고집하는 것은 핵무장에 대비하려는 포석이라는 해석도 무시할 수 없게 된다. 크리스틴 워무스 미 국방부 부차관이 10일 "국방예산 축소로 미군이 동아시아에서 철수할 경우 일본이 핵무장을 할 위험이 있다"며 "일본은 그럴 과학적 능력을 갖추고 있다"고 경고한 것도 이런 인식이 배경에 있다.
사라지는 플루토늄 1% 어디로
220억달러가 투입된 롯카쇼무라 공장은 착공 22년 만인 오는 10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완공되면 핵재처리 규모나 생산능력에서 세계 5위에 해당한다. 핵무기를 보유하지 않은 나라 가운데서는 유일한 재처리 시설이다. 가동을 시작하면 한 해에 TNT 2만톤의 폭발력을 지닌 핵무기 2,600개를 만들 수 있는 플루토늄 8톤을 생산하게 된다. 일본은 이미 9.3톤의 플루토늄을 롯카쇼무라와 다른 9개 섬에 나눠 보관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에도 35톤의 플루토늄을 맡겨두고 있다. 롯카쇼무라 공장을 5년 반만 가동해도 일본은 보유 플루토늄이 현재의 두 배로 늘어난다. 가동 12년 뒤에는 지금 미국이 가진 양 보다 더 많아진다.
롯카쇼무라 공장의 플루토늄 감시책임은 국제원자력기구(IAEA)에 있다. 하지만 지금의 시설과 장치로는 현장을 99%밖에 감시하지 못하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 1%의 허점 때문에 플루토늄이 사라져도 추적이 불가능한 셈이다. IAEA는 1%의 감시실패는 대규모 핵시설에서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수치라고 설명하고 있다.
문제는 롯카쇼무라 공장에서 생산되는 플루토늄 1%(8㎏)로 핵무기 26개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이다. 외부 테러세력이 아니라 내부에서 플루토늄 유출 위험이 생길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 CPI는 일본 폭력조직 야쿠자와 관련 있는 기업들이 일본 핵산업에 깊이 관여 돼 있다는 사실이 플루토늄 감시에 허점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먹히지 않는 미국 압박
CPI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미국 정부는 현재 테러세력의 좋은 표적이 될 수도 있다며 롯카쇼무라 공장 가동금지를 강력 촉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이전 조지 W 부시 정부 때도 롯카쇼무라 공장 안전 문제를 제기하며 일본에 대책을 촉구했다. 주일 미국 대사관이 국무부에 보낸 외교전문에는 "공자의 경비가 근무 중 잠을 자고 무장도 하지 않았으며 보안훈련도 제대로 되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안전문제는 충분하다며 계속 반발했다. 미국은 롯카쇼무라 공장 근로자 2,400명의 신분 확인의 필요성도 제기했으나 일본은 응하지 않았다. 일본 당국자는 "일본에선 테러가 불법이기 때문에 테러가 없다"는 식의 논리를 편 것으로 알려졌다. 오바마 정부 인사는 이런 안전불감증이 일본이 외부와 떨어진 섬이라는 지리ㆍ역사적 환경 때문이라고 분석했다고 CPI는 전했다.
미국은 완공을 앞둔 이 시설의 안전이 확보되지 않는다면 테러 세력의 매력적인 공격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우려가 큰 것으로 보인다. 오바마 정부 고위 당국자는 "후쿠시마 참사만 봐도 (일본은)핵시설 안전대책에서 민간이 1차 역할을 맡고 정부는 뒤로 물러서 있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비판했다. 그러나 일본 정부는 미국 압력에도 불구하고 롯카쇼무라 공장 가동 계획을 예정대로 추진한다는 입장을 밝혀, 오바마 정부를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미국이 일본에 실험용막?제공한 플루토늄 331㎏의 반환을 요구하고 나선 것도 이런 불편한 분위기와 무관치 않다는 분석이다. 일본은 핵안보정상회의에서 미 측에 반환의사를 표명할 것으로 알려졌다.
■ 탐사보도기관 CPI
공공청렴센터로 번역되는 CPI(Center for Public Integrity))는 언론인 찰스 루이스가 1989년 설립한 미국 최고의 비영리 탐사보도 기관이다. 부패와 권력남용 등을 세상에 드러내 민주주의를 증진시킨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조세피난처인 영국령 버진아일랜드에 돈을 은닉한 세계 각국 인사들을 폭로한 국제탐사보도언론인협회(ICIJ)도 CPI가 만들었다.
워싱턴=이태규특파원 tglee@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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