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F액션영화 '권법'은 '웰컴 투 동막골'(2005)로 유명해진 박광현 감독의 차기 작이다. 8년 넘게 준비해 온 이 영화는 아직 크랭크인조차 하지 못했다. 수백억 원으로 예상되는 막대한 제작비가 영화의 발목을 계속 잡았다. 몇몇 유명 배우의 캐스팅설과 중도하차설만 무성하자 충무로는 이 영화 제작이 완전히 물 건너갔다고 여겼다. 그러나 최근 '권법'의 제작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중국 투자자가 제작비(240억원)의 30%가량을 투자하기로 하면서 곧 촬영에 들어갈 예정이다.
지금 충무로에서 중국은 거대한 화두다. 2, 3년 전부터 중국에 매달리는 영화인들이 급격히 늘고 있다. 중국 영화시장이 폭발적으로 성장하자 대륙을 기회의 땅으로 여기는 영화인이 적지 않다. 중국의 영화 관객수는 2000년 1억1,500만명에서 2012년 4억7,000만명으로 급증했다.
감독들이 중국 영화시장 진출의 첨병 역할을 하고 있다. 2012년 허진호 감독이 멜로영화 '위험한 관계'를 연출하며 물꼬를 텄고 안병기 감독의 공포영화 '필선'시리즈가 흥행에 성공하며 디딤돌을 놓았다. 지난해에는 오기환 감독의 '이별 계약'이 370억원의 흥행 수입을 올리며 충무로에 중국 바람을 일으켰다. 장윤현 감독의 재난 스릴러 '평안도'와 박광춘 감독의 '러브앤란제리'도 중국과 손잡고 촬영을 앞두고 있다.
영화진흥위원회(영진위)는 지난해 말 베이징에서 '왕의 남자'의 이준익, '관상'의 한재림, '고지전'의 장훈 감독 등을 중국 제작자에게 소개하는 쇼케이스 행사를 열기도 했다. 이기연 CJ E&M 영화사업부문 중국투자배급팀장은 "중국의 영화산업은 아주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지만 인력은 부족한 형편"이라며 "이웃 나라의 좋은 인력에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고 분석했다. 2002년 100편이었던 중국의 영화제작 편수는 2009년 456편으로 늘었고 올해는 900편 가까운 영화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충무로의 숙련된 기술을 원하는 중국영화도 늘고 있다. 영진위가 발표한 '2013년 한국영화 산업 결산'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후반업체의 중국 수주 물량은 751만9,493달러였다. 2012년(364만2,180달러)보다 400만 달러 가량 폭증한 수치다.
충무로가 합작과 '기술 판매'로 중국 특수를 누리고 있으나 '완제품' 한국영화의 중국 진출은 아직 미미하다. 영진위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영화의 중국 수출액(175만7,100달러)은 전체 해외 수출액의 4.7%에 불과했다. 홍콩 수출액(220만8,540달러)보다 낮은 수치다. 영진위 관계자는 "중국의 한 해 외화 수입 허용 편수는 54편에 불과하다"며 "그마저 대부분 미국 영화 차지가 된다"고 밝혔다.
감독과 배우를 앞세운 합작은 한계가 분명하다. 한 영화 관계자는 "중국은 합작 등을 통해 영화 경쟁력을 키우고 있다"며 "핵심 기술 빼가듯 인력을 데려가 활용하면 장기적으론 우리가 손해"라고 우려했다. 오기환 감독은 "아직은 충무로 감독이 중국에 고용되는 단계"라며 "중국인들을 위한 영화를 기획까지 할 수 있는 단계까지 가야 진정한 한류라 할 수 있다"고 평가했다.
라제기기자 wenders@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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