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씨는 2012년 초 서울 종로구 혜화동의 모 빌딩 1층 상가 점포를 보증금 1억원, 월세 300만원에 계약해 중국음식점을 차렸다. 자비로 1억6,000만원을 들여 내부 인테리어 공사도 깔끔하게 하고 손맛도 좋았던 탓에 중국집은 곧 일대에서 맛집으로 자리잡았다. 이를 지켜본 건물주는 1년 뒤 월세를 325만원으로 올렸고 A씨는 자리를 잡아 가던 터라 '울며 겨자 먹기'로 재계약했다. 하지만 중국집에 손님이 끊이지 않는 것을 지켜 본 건물주는 이듬해 월세를 350만원으로 올리겠다고 통보했다. 매달 월세로 350만원이 나가면 이윤을 남길 수 없다고 판단한 A씨는 법의 보호를 받기 위해 수소문했지만 헛수고였다. 환산보증금(보증금+월세×100)이 4억2,500만원으로 상가건물 임대차보호법 적용 기준(4억원 이하)을 넘어버렸기 때문이다. A씨는 결국 2년 간 공들였던 중국집 운영을 접을 수밖에 없었다.
서울 시내 상권 5곳 중 한 곳은 A씨처럼 높은 임대료 때문에 임대차보호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11일 서울시에 따르면 지난해 11월부터 지난달까지 시내 상가 5,052곳을 대상으로 '상가임대정보 실태조사'를 한 결과 전체 상권의 22.6%가 임대차보호법의 사각지대에 있었다. 강남 상권의 경우 45.5%가 보호를 받지 못했고, 특히 보증금이 높은 강남 상권 1층 상가는 68.3%, 서울 도심 1층 상가는 37.6%가 보호대상에서 제외됐다.
법의 보호를 받지 못하는 상가가 많은 것은 천정부지로 솟는 임대료 때문이다. 임대차보호법 적용 대상이 되려면 환산보증금이 4억원 이하여야 하지만 서울 전체 상권의 평균 환산보증금은 3억3,242만원, 강남의 경우는 5억4,697만원이나 됐다. 서울시 관계자는 "최초 계약 시에는 환산보증금이 4억원 이하여서 보호대상이었지만 상권이 활성화될수록 건물주가 더 높은 임대료를 제시해 법의 보호범위를 벗어난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밝혔다.
이 때문에 서울 시내 상가 평균 임대기간은 1.7년(약21개월)에 불과했다. 이는 임대차보호법에 보장된 최장 계약보장기간(5년)의 3분의 1수준이다.
이에 서울시는 임대차보호법의 보호 범위를 확대하고 계약기간 중 임대료 인상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은 건의안을 지난 1월 법무부에 제출했다. 또한 상가세입자가 초기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도록 임대차 최소보장기간을 현행 1년에서 2년으로 늘리는 방안도 건의했다.
배현숙 서울시 소상공인지원과장은 "그 동안 불공정한 임대차 관계로 임차상인들이 많은 고통을 받았는데도 법적 제도적 구제책이 미흡했다"며 "관계 부처와 협의해 빠른 시일 내 개선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정승임기자 choni@hk.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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