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이 그제 "고노담화 재검토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확인 작업은 제대로 하겠다. 국회가 요청하면 (결과를)제출할 용의가 있다"고도 했다. 앞의 발언만 보면 위안부 강제동원을 인정하고 사죄한 고노담화를 계승하겠다는 말처럼 들린다. 그러나 '확인 작업' 운운은 조사팀을 설치해 작성경위 등을 다시 검토하겠다는 뜻이어서 일본 정부의 진짜 의중이 어디에 있는지 의심케 하고 있다. '결과를 제출할 용의가 있다'는 말도 상황에 따라서는 정치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의미로 읽힌다.
지난달 28일 밝힌 고노담화 재검토 방침에 대한 국제사회의 비판이 쏟아지자 일본은 조금씩 말을 흐리는 모호한 화법을 구사해왔다. 지난 6일 윤병세 외교장관이 스위스 유엔인권이사회에서 일본을 강하게 질타하자 다음날 오카다 다카시 제네바 대표부 차석대사는 "담화 그 자체를 재검토하겠다고 한번도 발언한 적이 없다"고 발뺌했다. 3일에는 스가 관방장관이 "정부의 기본 입장은 담화를 계승하는 것"이라면서 "기밀을 유지하면서 검증하는 것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일본은 과거사 도발을 중단하라는 미국의 거센 압력에 직면해 있다. 아베 신조 총리의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하게 비판했던 주일 미국 대사관은 최근 '고노담화 검증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입장을 총리관저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일본이 먼저 제안해 오늘 서울에서 한일 외교차관급 회담을 갖는 것이나 23일 헤이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에서 한일정상회담 가능성을 흘리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다음달 3년 반 만에 국빈방문하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도 신경을 써야 한다.
'고노담화를 재검토하겠다'는 것은 사실상 담화를 수정하겠다는 의미다. 그랬던 일본이 '재검토는 않되 검증은 하겠다'는 애매한 태도를 보이는 것은 과거사에 대한 반성에서가 아닌 국제사회의 압박을 일단 모면해 보겠다는 저급한 술수라고 보지 않을 수 없다. 한일관계 개선은 일본의 과거사 반성에서 출발한다. 궤변이나 말장난은 불신만 깊게 할 뿐이라는 것을 일본은 직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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