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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운 봄 내려앉은 쪽빛 바다, 고요한 섬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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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고운 봄 내려앉은 쪽빛 바다, 고요한 섬에 들다

입력
2014.03.11 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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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더디게 오니 안달난다. 이토록 애태우는 봄, 어디쯤 왔을까 궁금하다면 남해 바다에 둥실 떠 있는 섬으로 간다. 볕 살포시 내려앉은 푸른 실컷 보고 나면, 꽃 아직 화려하지 않아도 봄 왔구나 싶다. 전남 고흥 끄트머리의 섬들. 그곳 바다가 지금 다 은빛이다. 이름 예쁘고 풍경 예쁜 소록도, ‘박치기왕’ 프로레슬러 김일의 흔적 오롯한 거금도, ‘나로호’ 발사로 이름 알린 외나로도. 뭍과 다리로 연결돼 구경도 편하다.

● 사슴 닮은 예쁜 소록도

지도 놓고 보면, 고흥은 남해로 툭 튀어 나온 반도다. 그 서쪽 끄트머리에 소록도와 거금도가 있다. 육지에서 소록대교 건너면 그 유명한 소록도다. 고흥은 몰라도 이 섬 익숙하다. 한센병 환우들이 모여 사는 이 섬은 육지와 다리로 연결(2009년)된 후 사람들 사이에서 ‘가보고 싶은 섬’으로 자리매김했다. 사슴 닮은 이 작은 섬이 어디에 붙어있었는지 몰랐다면 이번에 기억해 둔다.

소록도주차장에서 중앙공원까지 산책로 따라 간다. 울창한 소나무 숲을 지나 바닷가 백사장 옆으로 지나는 약 1km 남짓한 길인데, 참 예쁘다. 그리고 또 먹먹하다. 이 일대가 수탄장. 한센병 환우와 병원 직원들의 생활공간을 구분하던 경계지역이다. 또 부모와 아이가 생이별 하던 탄식의 장소. 사연은 이렇다. 일제강점기, 일제는 이 섬에 자혜의원을 짓고 전국의 한센병 환우들을 강제 이주시켰다. 그리고 이들을 철저하게 외부와 격리했다. 결혼 금지, 혹시라도 아이가 태어나면 부모와 생이별시켰다. 바로 이 수탄장에서 부모는 아이를 떠나보냈다. 그리고 한 달에 한번 도로 건너에서 아이를 눈으로만 만났다. 이러니 눈 감으면 세상에서 가장 가슴 아픈 만남이 보인다.

길 끝에서 병원(국립소록도병원)을 만난다. 이 병원의 출발이 자혜의원이다. 환우를 감금했던 감금실, 시체를 부검했던 검시실, 생식기능 없애는 수술했던 수술실…. 당시 흔적 오롯한 건물들이 병원 주변에 산재해 있다.

병원 뒤 중앙공원이 참 예쁘다. 아이와 놀러 온 사람들이 나무 사이를 누비며 봄을 즐긴다. 위가 뾰족하지 않고 평평한 삼나무도 보고, 하나의 기둥이 위로 갈수록 서 너 개로 갈라지는 반송도 구경한다. 공원은 환우들의 강제노역 부산물이다. 이들은 피와 땀과 한으로 천상의 공원 만들어 놓았다. 그래서 또 먹먹하다. 여기까지만 출입 가능. 공원 뒤 마을에는 약 580여명의 환우들이 지금도 살고 있다.

멋진 풍경 찾아가는 것만 여행일까 싶다. 풍경 속 사람들의 삶을 쫓는 것도 제법 의미 있는 여행이다. 오후 5시 이전까지 누구나 해안 산책로 따라 중앙공원까지 구경할 수 있다.

● ‘박치기왕’ 김일의 고향 거금도

소록도에서 거금대교 건너면 거금도다. 거금대교는 복층다리다. 상층부는 자동차 전용, 하층부는 자전거 전용이다. 복층구조의 다리는 우리나라에 몇 개 있다. 그런데 한 층 전체를 다 자전거나 보행자에게 내어준 것은 이 다리가 유일하다. 거금도 쪽 주차장에서 자전거도 빌려 준다. 다리는 금빛을 띠는데, 고흥 특산물인 유자 빛깔을 상징한다. 다리 건너 해안도로 따라 간다. 해안 일주도로가 잘 나있어 어느 방향으로 가든 섬을 한 바퀴 돌게 된다. 바다 구경도 실컷 할 수 있다. 국도 27호선 타고 금산면소재지->옥룡마을->소원동산->오천 공룡알·몽돌해변->오천항 방향으로 섬을 시계 반대방향으로 돈다. 중간에 송광암도 가 본다.

일단 김일(1929~2006)을 알현한다. 맞다. 1960~70년대 박치기로 세계를 재패했던 그 유명한 프로레슬러. 김일기념체육관이 금산면소재지에 있다. 딱히 눈이 놀랄 볼거리는 없지만, 퍽퍽한 일상에 잊고 지내던 어린 시절 동경은 끄집어 낼 수 있다. 체육관 앞, 그의 동상 마주하고 서면 시간은 거꾸로 흐른다. 흑백 TV 안에서 그의 박치기 한방에 거구들이 픽픽 나가떨어진다. 그 때의 함성 다시 들리고, 주먹에는 시나브로 힘이 들어간다. 40대 중년은 코흘리개 아이가 된다. 배고프던 시절, 밥 먹는 것도 잊고 보던 그의 경기다. 영웅은 가슴에 여전히 살아있는데, 184cm의 당당한 체구를 ‘소년’으로 전락시킨 이 조그마한 동상이 속 터지게 만든다. ‘이왕 동상 세울 거면 좀 더 우람하고 멋지게 만들 것이지…’ 그의 흔적 더듬을 수 있는 것들도 더 많아지길 기대해본다.

고흥에서 힘자랑 하지 말랬다. 이곳 사내들, 골격 참 단단하고 힘 또한 장사라는 말일 거다. 고흥은 씨름으로 유명했다. 특히 거금도 출신 사내들이 씨름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김일도 그랬다. 어렸을 때부터 일대 씨름판을 휩쓸었단다.

거금도에 전기가 들어온 것은 ‘청와대 지시’였단다. 김일 때문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국민 영웅이 된 그를 불러 소원을 물었더니, 고향 사람들이 자신의 경기 볼 수 있게 전기 넣어 달라고 했단다. 그러더니 정말로 전기가 들어왔다. 육지에도 전기 안 들어 온 동네 많던 당시 섬에 전기가 들어간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거금도는 드瓚遣鉞玖?상춘(賞春)하는데 그만이다. 소록도는 주차장에서 중앙공원까지 약 1km 구간만 둘러보는데 자유롭고, 우주센터가 있는 외나로도 역시 출입제한으로 섬 일주가 불가능하다. 거금도에서는 가다가 마음 끌려 멈춘 곳이 경승지가 된다. ‘작은 제주도’쯤 되니 자동차를 여러 번 세워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옥룡마을 버스 정류장 인근에 멈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다도해의 풍광이 참 멋지다. 전복 양식장 사이를 지나는 작은 어선의 움직임이 경쾌하다. 오천마을 인근에 공룡알해변도 들러본다. 바다와 바람이 둥글둥글 다듬어 놓은, 수박만한 크기의 몽돌들이 해변에 지천이다. 정말 공룡알 같다. 금방이라도 새끼공룡 튀어나올거 같다. 하얀파도펜션 아래에 있다. 무거워서 들 수가 없으니 몰래 가져갈 생각도 못한다. 오천항은 국도 27호선의 종점이다. 이를 알리는 비석이 항구 앞에 서 있다. 방파제 안쪽에 작은 갯바위들이 부려져 있는데, 물결 잔잔한 날 이 풍경 어찌나 서정적인지, 사진 좋아하는 이들 즐겨 찾는다. 조금 더 가 만나는 월포마을은 매생이로 유명하다. 겨울에 오면 매생이밭 실컷 볼 수 있다.

섬을 가로지르는 도로도 달려본다. 파성재 고개에서 송광암 쪽으로 가는 길은 꼭 기억해 둔다. 한갓진 임도 따라 가면 고흥반도의 남쪽 해안이 눈에 다 들어온다. 봄 부리는 하늘, 바다는 쪽빛, 봄 머금은 마늘밭, 양파밭은 초록. 그림이 따로 없다. 산행도 해본다. 파성재에서 가면 섬에서 가장 높은 적대봉(592m) 정상까지 왕복 2시간 걸린다.

● 바다, 편백나무숲…꼭 봐야 할 풍경들

외나로도는 고흥반도의 동쪽 끄트머리다. 나로호가 발사 된 후 찾는 이들 제법 늘었단다. 이전까지는 관광지로 잘 알져지지 않았다. 사람들, 고흥하면 소록도와 외나로도를 떠올리니, 외나로도는 가 본다. 역시 다리가 놓여 있어 포두면에서 국도 15호선 타고 가면 내나로도 거쳐 외나로도로 가게 된다. 섬을 에두르지 않고, 관통하는 길이지만, 볕 가득 머금은 바다는 역시 이 길에서도 볼 수 있다. 나로우주센터 들머리, 우주과학관에서는 다양한 우주체험이 가능하다. 과학관이 있는 공원은 봄날 산책하기 좋다. 실물 크기의 나로호 모형도 볼 수 있고, 의자가 놓은 고즈넉한 해변도 있으니 아이 손잡고 간다면 들러본다.

섬 말고 육지도 돌아본다. 점암면에 있는 팔영산 편백나무 숲이 이런 곳이다. 한 낮에도 볕이 들지 않을 정도로 편백나무가 울창하다. 한 제지회사가 처음 심었다는데 ‘전국에서 가장 넓은 규모’라는 것이 고흥 문화해설사의 자랑이다. 멀리서 보면 산 정상부까지 편백나무 빼곡하다. 산책로 잘 만들어져 있다. 걸어보면 쭉쭉 뻗은 나무가 한철 사는 꽃보다 여운 오래 간다는 것을 알게 된다. 꽃 찾아 몰려드는 사람들 피하려면 호젓한 숲이 낫다. 팔영산은 지난 2011년에 국립공원으로 승격됐다(다도해해사국립공원 팔영산지구). 정상에 여덟 개의 봉우리가 참 기이한데, 등산로 들머리 능가사에서 이 모습 뚜렷하게 보이니 이 절집도 들른다. 능가사는 신라의 고찰, 송광사의 말사다. 가람들 새로 지은 것들 많아 고즈넉한 멋은 덜 하지만 대웅보전(보물 1307)과 사적비 뒤쪽의 소나무 숲은 볼만하니 기억해 둔다.

남열리 일대도 빼놓지 않는다. 예쁜 남열리해변은 일출 명소다. 해변 옆 언덕에 있는 우주발사전망대도 올라본다. 전망대에선 여수만, 고흥반도의 남쪽 해안이 다 보인다. 아득한 수평선에 눈이 먼다. 멀리 외나로도도 보인다. 실제로 나로호 발사 때 이를 보러 전망대 인근이 북적였다. 발사전망대 옆 용암마을의 용바위(용암)도 가본다. 용이 승천할 때 남긴 흔적이 또렷한 바위다. 이 마을 앞 바다에 살던 용이 천년을 살다가 큰 천둥소리와 함께 바다에서 암벽을 타고 승천했다는 이야기다. 거대한 용이 지나갔다는 자리는 마치 빗자루로 쓸어 낸 것처럼 주변과 뚜렷하게 구분된다. ‘기도발’도 좋아 무속인들, 신앙인들 많이 온다. 방조제 인근에는 용머리 바위도 있다. 마을 사람들이 승천한 용이 보고 싶다고 했더니 용이 꿈에 나타나 머리로 환생해 마을을 지키겠다고 했단다. 이후에 정말 용머리 모양의 바위가 생겨 여기에 잘 모셨단다. 제주도의 용두암의 축소판이다.

섬 품은 바다 곱고, 볼거리 풍성한 고흥이다. 서울에서 가려면 좀 멀지만, 애써 찾아간 값어치는 한다. 더디게 오는 봄이 거기에 머물고 있다.

●여행메모

△호남고속도로 익산 갈림목에서 익산~포항 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완주에서 다시 완주~순천 고속도로로 갈아탄다. 새로 난 영암~순천 고속도로 이용하면 고흥 갈 수 있다. 운전하는 것이 부담스럽다면 KTX타고 순천까지 간 후 렌터카 빌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순천에서 거금도까지 차로 약 1시간 거리다.

△소록대교 가기 전, 녹동항 영성횟집(061-835-5303)은 통장어탕이 유명하다. 장어를 통째로 썰어 넣고 얼큰하게 끓여낸다. 30년 가까이 된 집이다. 고흥읍 바다속으로(061-835-2222)는 새조개 샤브샤브가 맛있는 걸로 현지인들 추천하는 곳이다. 회도 판다.

△고흥읍에 모텔 많다. W모텔이 가장 최근에 지었다. 거금도 오천 공룡알 해변 인근에 하얀파도펜션은 전망이 좋다.

고흥=글ㆍ사진 김성환기자

한국스포츠 김성환기자 spam001@hks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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